[여적] 흰개미 경보
인류가 다른 행성에서도 살 수 있을까. 공상을 현실로 옮긴 사례가 있다. 1991년 한 생태학자가 화성 이주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에 인공 생물권 ‘바이오스피어2’를 조성해 실험을 벌인 적이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남녀 여덟 명이 지구의 생물권과 유사하게 만든 면적 1만2750㎡의 유리온실 속에서 2년을 살았다. 처음 몇 달간은 모든 것이 정상이었으나 생물들이 기후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들이 사라지자 식물도 사멸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류가 지구의 소중함을 재차 깨달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체감케 하는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꿀벌의 개체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해충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주택에서 흰개미가 발견돼 시민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환경부 조사 결과, 국내에서 보고된 적 없는 마른나무흰개미과의 크립토털미스속 흰개미로 확인됐다. 이름만 개미일 뿐, 바퀴벌레의 사촌쯤 된다고 한다. 주로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도심 열섬 현상 때문에 국내에 둥지를 틀게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이번에 발견된 흰개미는 날개가 달린 상태여서 이미 군락지를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흰개미는 목재를 갉아먹는 습성 탓에 ‘목조건물 킬러’로 불린다. 다른 흰개미가 팔만대장경 경판을 갉아먹은 적도 있다. 목조문화재 보호에도 비상이 걸릴 판이다. 흰개미는 나무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살 수 있어 방제가 어렵다고 한다.
환경부는 흰개미의 위험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에 실린 ‘탐지견을 활용한 목조건축물의 흰개미피해 조사 연구’를 보면 탐지견이 빈대와 개미, 바퀴벌레, 흰개미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흰개미가 확산되면 탐지견을 앞세운 조사가 낯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 우리 주변에 더 무서운 녀석들이 등장할 것이다. 동식물들도 살기 어려운 조건이 되면 서식지를 옮겨야 할 터이니. 흰개미가 내는 경보음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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