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배움과 진심이 담겼기에" L호텔 김캡틴의 커피는 오늘도 맛있다

송주희 기자 2023. 5. 22. 19: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김형준 롯데호텔 마스터 바리스타
88년 도어맨 시작으로 35년 롯데호텔맨
이태리레스토랑 근무로 공부중요성 느껴
경영진 '커피양이···' 지적에 진땀 일화도
바리스타·지도자 자격···직원 대상 강사로
"커피맛은 김캡틴이 최고" 찬사에 뿌듯해
'네네' 만이 서비스 × "고객 소통 중요해"
후배들 경쟁력 위해 교육강조 "미리공부"
김형준 롯데호텔 마스터 바리스타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1층에 자리한 뷔페 ‘라세느’의 커피 바에서 직접 만든 라떼를 들어 보이고 있다./오승현기자
[서울경제]

커피잔을 손에 든 한 남성이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건넨다. “에스프레소인데 양이 많은 거 아닌가요?” 한 모금 마시기도 전 평가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 시내 한 특급 호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손님이 커피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지만, 직원은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고 진땀만 흘릴 뿐이다. ‘기계가 뽑아주는 대로 가져온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머신은 어쩌다 설정이 잘못됐으며 커피에 해박한 이 손님은 왜 하필 그룹의 VVIP란 말인가.

지금도 떠올리면 등골 오싹한 20여 년 전 일이다. 전문적인 질문을 던지던 손님은 현재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이다. 당시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던 이 일화의 주인공은 지금은 롯데호텔의 커피 전문가인 김형준(사진) 마스터 바리스타다. 한때 기계 설정이 잘못됐는지, 에스프레소의 정량은 어느 정도인지도 몰랐던 그는 이후 집요한 학습과 자격증 취득으로 직원들을 교육하는 마스터 자리까지 올랐다.

김형준 롯데호텔 마스터 바리스타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1층에 자리한 뷔페 ‘라세느’의 커피 바에서 직접 만든 라떼를 시음하고 있다./오승현기자

최근 소공동 롯데호텔 뷔페 라세느에서 만난 김 마스터는 “호텔업의 서비스라는 것이 손님에게 ‘네, 네’ 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며 “고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꾸준히 공부한 덕에 35년간 현장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마스터의 호텔업력은 롯데호텔 재직 기간과 같다. 정식 입사는 1989년이지만, 1988년 호텔전문학교 재학시절 서울올림픽 기간 산학실습생으로 잠실 롯데호텔에서 도어맨으로 활동하며 국빈을 맞이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게 롯데와 인연의 시작이다. 롯데호텔은 법인이 1973년 설립돼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는데, 김 마스터는 현재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 중 근무 기간이 긴 대표적인 인물이다.

입사 후 잠실 호텔에서 룸서비스·한식당 근무를 거친 김 마스터는 1999년 소공동으로 이동해 이탈리안 레스토랑 업무를 맡으면서 호텔리어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와인, 메뉴 정보 하나 알아내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요. 책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할 수 있는 대로 주방에 묻고, 업체에 수소문 해 기본 정보를 학습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하루는 ‘이태리 레스토랑 지배인이 (이탈리아) 한번 안 갔다 오면 어쩌냐’는 한 단골손님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진 그 손님을 통해 이탈리아의 지역별 음식과 특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김 마스터는 “나 역시 공부해서 고객에게 정보를 주고, 소통할 수 있어야 관계가 오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후 현지를 직접 방문해 더 적극적으로 와인과 이탈리아 음식을 공부했다. 당시 애정어린 핀잔(?)으로 자극을 줬던 손님은 이날 인터뷰 사진 촬영 때도 매장에 들러 멀찌감치에서 김 마스터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

김형준 롯데호텔 마스터 바리스타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1층에 자리한 뷔페 ‘라세느’의 커피 바에서 라떼를 만들고 있다./오승현기자

“공부한 만큼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이 된다”는 점을 확인한 김 마스터는 커피를 다음 목표로 정했다. 와인과 음식을 알기 위해 떠난 이탈리아 탐방에서 그는 일상에 녹아든 커피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현장에서 다진 감각이야 완벽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으로 더 풍성한 식음(F&B) 서비스를 완성하겠다는 다짐에 그는 다시 자격증 수험서를 펼쳤고, 입사 27년 되던 2016년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을 땄다. 이 같은 노력과 연구는 오롯이 커피 맛에 녹아 들었다.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님은 저를 볼 때마다 ‘대구대표’라고 부르면서 늘 격려해주셨어요. 이용근 전 금감원장 회고록엔 ‘커피는 L호텔 김 캡틴 것이 제일 맛있다’는 내용이 있어서 뿌듯했고요.” 단골이 많은 롯데호텔 서울 특성상 우연히 들렀다가 라세느에서 김 마스터를 보곤 “오늘 맛있는 커피 마시겠네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손님을 만날 때면 그날 쌓인 피로가 단번에 녹아내린다.

김형준 롯데호텔 마스터 바리스타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오승현기자

이 뿌듯함을 맛볼 시간(정년)도 이제 4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호텔산업이 막 꽃 피던, 그래서 열정에 비해 메뉴얼도 교육 환경도 척박했던 시절을 경험한 선배이기에 김 마스터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체득한 것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2016년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후 바로 카페마스터·지도사 자격증을 추가로 따 롯데호텔 사내 강사로 활약해 온 이유다. 그는 사내 직원 및 퇴직자를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라세느 영업장에서도 자체 교육을 통해 장기 아르바이트 직원들까지도 최소 2급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다른 업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마스터는 “고객이 비싼 돈 내고 호텔에 왔으면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미리 공부해둬야 한다”며 “뭐든 빠른 시대이기에 뒤처지면 고객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면에서 롯데호텔이 좋은 것, 새로운 것 배우는 데 있어 편한 분위기였다”며 장기 근속의 비결을 밝혔다.

김 마스터는 오늘도 출근해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추출해본다. 물의 온도와 양, 원두의 분쇄 정도... 점검이 끝나면 오늘의 영업 시작이다. 그렇게 커피를, 누군가와의 추억과 시간을 내린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