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서 회자하는 ‘전두환 시즌2’…드라마가 아닌 현실은 섬뜩하다

한겨레 2023. 5. 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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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청환 | 시인

‘기사보다 댓글’이라는 말, 들어보셨는가. 엉뚱하게 변죽만 울리며 민의를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하는, 성에 차지 않는 기사를 읽었을 때, 그 답답함을 촌철살인의 댓글에서 찾아 읽는 세태에서 나온 말이다. 행간과 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이런 댓글을 발견하면,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조금은 뚫리는 듯하다.

주요 정치적 사안이나 사회문제에 관해 언론이 사실이나 현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의도적으로 과장 또는 축소하거나, 편향 또는 왜곡된 듯한 기사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생각보다 많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언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런 느낌의 기사를 읽을 때면 나는 종종 댓글난을 살펴보곤 한다.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안일수록 댓글 수도 많기 마련인데, 공감·찬성 대 부정·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해당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과 논조 범위 안에서의 찬·반 댓글이 대부분이다. 한 걸음 나아가 더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임에도 다른 기사들의 위세에 묻혀 가까스로 지면의 구석진 한 귀퉁이로 밀려나 있거나, 의도적으로 침묵 당하는 무언가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언론은 성곽 아래 민심을 성곽 위 위정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성곽 위의 상황 또한 성곽 아래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민심, 즉 새로운 여론이 만들어지고 이를 반복·순환시키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당연히 그 과정은 정직하고 공정하며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어떤 압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축소 또는 삭제·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성곽 아래 백성의 한 사람인 범부로서 필자의 언론에 관한 생각이다. 그런데 기사를 통해서가 아닌 거기에 달린 댓글을 뒤져서야 겨우 진정한 민의를 확인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면 아마도 그 언론은 오염되었거나 최소한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행한 방증일 것이다.

요즘 ‘시즌2’가 인기다. 드라마 이야기다. 당초 계획에 없었지만, 예상 밖의 인기 탓에 뒤늦게 후속작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시즌1, 시즌2로 나눠서 방영하는 경우도 있다. 고백하자면, 필자도 최근 재미있게 빠져든 드라마가 몇 개 된다. 그런데 이런 시즌2 이야기를 심각한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전두환 시즌2가 한창이다, 그것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얼마 전 한 사회·정치면 기사를 읽다가 답답한 마음에 예의 댓글난을 살펴봤을 때 발견한 댓글이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좋아요’가 대댓글로 여럿 달리기도 했다. 물론 아래로 늘어뜨린 엄지손가락도 만만찮게 있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사회·정치 문제는 본래 각자가 처한 상황과 신념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일 만큼 민감한 주제인지라, 그래서 가족끼리도 종종 의가 상할 만큼 논쟁하며 싸웠다는,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에피소드를 이따금씩 듣는다. 그 댓글이 맞다/틀리다, 옳다/그르다를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근래 들어 이와 비슷한 댓글을 심심찮게 목격했다는 사실만은 밝혀두고자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매번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다. 혹여라도 그 댓글들이 현실을 상당 부분 제대로 비추고 있는 거라면, 정말 그런 거라면, 이거야말로 정말 정말 큰일 아닌가!

“전두환 정권 시즌2, 그게 왜 큰일이야?”라는 반문을 던지는 누군가가 있으려나? 미안하지만, 그거 정말 큰 일인 거 맞다. 사회적·역사적 평가가 끝났음은 물론, 상식적으로도 재론의 가치가 없는 일이다. 현실은 자극적이거나 잔인할수록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되는 드라마가 아니다.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그 사람들’과 기사가 아닌 댓글에서 답답함을 해소해야 하는 ‘불행한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 한 토막을 발견했다.

‘악독한 강철이 지나간 자리는 봄도 겨울이라는데, 이 얼어붙은 여름을 보자고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민주화를 염원해온 것은 아닐 터이다.’(<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 2018)

이른바 ‘한국일보 사태’로 불리는, 회사 쪽의 편집국 폐쇄가 이어지던 2013년 여름 어느 날,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고 황현산 선생이 쓴 칼럼 ‘한국일보에는 친구들이 많다’의 마지막 대목이다. 10년 전의 글이 여전히 준엄하게 다가오는 오늘이라면 너무 섬뜩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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