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컬래버노믹스 <14>] 다문화 가정, 컬래버노믹스의 요람이다
인류는 다양성으로 진화해 왔다. 순수혈통주의(이하 순혈주의)를 고집한 집단은 쇠락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근친끼리 결혼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국 몰락했다. 생물학적으로 유전병이 생길 뿐만 아니라 폐쇄성으로 인해 문화 융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도 게르만 민족의 순혈주의를 신봉하며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순혈주의란 순수한 혈통만 선호하고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혈통은 배척하는 주의를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순혈주의는 대부분 몰락했다.
지금은 온 세상이 다양성으로 넘친다. 인류는 1980년대 이후 세계화 물결과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기술을 연결하며 융·복합 문화를 꽃피웠다. 인류 전체가 ‘융·복합 창조’라는 신문명을 맞이한 것이다. BTS의 노래는 한국 노래인가, 동양 노래인가, 서양 노래인가. 모든 것이 융·복합된 음악이다. 이제는 매일 먹는 음식도 동서양이 혼합된 퓨전 음식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도 다양해졌다. 다양성이 인류의 신문명이다.
다양성의 확장은 사람만이 아니다. 요즘 반려견은 종도 다양하지만, 실은 대부분이 잡종견이다. 개도 순수 혈통은 쇠퇴한 것이다. 잡종 강세란 무엇인가. 동식물의 세계에서 두 품종 간 교잡 시 잡종 제1대에서 부모의 형질보다 우수한 형질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기르는 화초도 잡종 강세로 변형된 것이 많고 들꽃들도 자연스럽게 잡종 강세로 진화하고 있다.
중세 귀족들은 순혈주의를 고수했지만, 호기심 많은 과학자는 끊임없이 융·복합 창조에 도전했다. 대표적인 도전이 연금술이다.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돼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퍼져나간 화학 기술이다. 구리, 주석, 납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한편으로는 늙지 않는 영약을 개발하려고 시도한 기술로 근대적 과학이 정립될 때까지 근 1000년을 이어왔다. 연금술은 최종 목표 달성에 실패했지만, 수많은 도전과 연구로 과학 발전의 기반과 동력이 됐다. 화학(chemistry)이란 용어도 연금술(alchemy)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유용하게 쓰고 있는 금속은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이 섞인 합금이다. 합금 기술 또한 연금술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또한 수명 연장이 가능한 의학 기술과 바이오 기술도 연금술의 연장선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에 평생을 바친 수많은 연금술사의 노력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신봉하며 살아왔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백의민족’이란 말이 우리 민족의 동의어였다. 그러나 1980년대 정보화 사회와 세계화 물결에 휩싸이면서 순혈주의가 허물어졌다. 우리 상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전 세계 상품이 우리 생활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요즘 마트에 가보면 여러 나라 과일이 다 모여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다양성의 사회다. 한류 열풍도 동양과 서양 그리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의 세계로 더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있다. 바로 다문화 가정이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으로,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가정이 다문화 가정이다. 1990년대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고 중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출신 국가도 다양해졌다. 현재 대한민국 출생아 100명중 6명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다. 이들의 강점은 이중 언어 능력과 융합 지능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잘 포용하고 북돋워 준다면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 가정은 도움을 줘야 할 어려운 이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컬래버노믹스를 이끌어 갈 소중한 인적 자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지원해야 한다. 전액 장학금 같은 파격적인 교육 지원도 필요하다. 컬래버노믹스란 무엇인가. 두 개 이상의 개체가 서로 다른 강점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거나 거대한 시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이야말로 컬래버노믹스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컬래버노믹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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