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63> 셀린 마치뱅크의 ‘엄마의 부엌에 온 낯선 사람(A Stranger in My Mother’s Kitchen)’] 떠나보낸 엄마의 레시피, 요리를 통한 딸의 작별 인사
생각나고 그리운 엄마의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행운 같은 것이다. 그 음식엔 단순히 맛의 차원을 넘어, 사랑과 풍요로움, 추억과 소중함이 깃든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진가 셀린 마치뱅크(Celine March bank)는 일상의 요소에 관심을 두고 특히 집, 가족, 커뮤니티에 대한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다.
셀린 마치뱅크의 ‘엄마의 부엌에 온 낯선 사람(A Stranger in My Mother’s Kitchen)’은 요리사였던 엄마 수 마일스(Sue Miles)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가 남긴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 엄마를 떠나보낸 후 5년간의 애도 과정을 담은 책이다.
셀린의 엄마는 201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0년간 요리사로 일했다. ‘가디언’은 부고 기사에서 그녀를 영국 레스토랑 혁명의 주역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셀린은 엄마의 집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셀린은 많은 그릇과 사진 그리고 상자에 담긴 손 글씨로 종이에 적은 아름다운 레시피를 발견했다. 그것은 평생 요리사로 일하면서 쌓아온 엄마만의 레시피였다.
이 레시피들을 보며 셀린은 깨달았다. 자신이 실은 놀라운 요리 속에 둘러싸여 자라왔지만 자신은 그저 평범한 일로 여겨왔다는 것 그리고 사실 이는 다른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레시피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셀린은 자신이 엄마의 이 음식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 깨닫게 됐다.
그리고 엄마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 거동이 불편해졌을 무렵, 엄마가 자신에게 함께 요리하자고 한 적이 있었다. 엄마를 부축해 함께 들어간 부엌에서 엄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를 해줬다. 요리하는 내내 엄마는 레시피를 설명하는 데 열중했다. 셀린은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부엌에서 함께 보낸 이 마지막 시간의 의미를 알게 됐다. 이것이 너무 늦기 전에 모든 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엄마만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음식은 우리 관계의 중심이었고, 그녀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아직 못다 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내 방식대로 삶에서 일어난 이 비극을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했고, 엄마가 없는 새로운 삶을 이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셀린은 엄마가 남긴 레시피에 따라 요리해 보기로 결심했다. 엄마의 부엌에는 그녀가 평생 모으고 사용하다 남기고 간 그릇과 조리 도구가 가득했다. 우선 자신이 좋아했던 음식,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음식, 사람들이 알고 있던 엄마의 음식으로 시작했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미처 배우지 못한 부분을 레시피를 통해 배우고, 요리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의 따뜻한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셀린은 이 과정에서 레시피에 수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것, 음식 냄새를 맡으며 엄마와 공유했던 순간으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요리를 계속할수록 세상을 떠난 엄마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의 부엌에 온 낯선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담은 사진과 글 그리고 엄마가 남긴 17개의 레시피를 엮은 책이다. 책에는 우선 작가의 일기가 날짜와 함께 수록돼 있다. 책의 가장 앞에 수록된 첫 일기에서 작가는 앞으로 엄마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 아픔에 대해 거칠게 토해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는 이 감정을 조금씩 추슬러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리고 사진은 엄마가 남긴 물건과 공간 그리고 작가의 요리 과정을 서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책에 수록된 레시피는 엄마가 남긴 손 글씨와 종이의 형태를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책에 낱장 형태로 삽입돼 있다. 작가가 엄마의 집에서 레시피를 발견한 것처럼, 독자가 책 곳곳에 담긴 레시피를 하나씩 꺼내볼 수 있게 책은 디자인됐다.
셀린에게 이 작업은 일종의 치유 과정으로 보인다.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슬픔에서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썼고,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택한 글,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찍은 사진, 이 두 가지를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감정과 생각이 조금씩 해소돼 가는 과정이 책에 담겨 있다.
레시피가 담겨 있지만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니다. 이 책은 마음의 준비 없이 엄마를 떠나보낸 딸이 계속되는 삶을 힘내서 살아가기 위해, 레시피를 통해 엄마를 다시 생각하고 느끼고 그리하여 마침내 작별 인사를 하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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