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두 번 속지않는다"… 경제 선택한 그리스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5. 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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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신민주주의당 당사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그리스 내무부에 따르면 개표율 99.59% 기준 신민주주의당은 40.79%를 득표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EPA연합뉴스

'유럽의 문제아'에서 깨어난 그리스의 선택은 경제였다. 21일(현지시간)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우파 집권당인 신민주주의당(이하 신민당)은 2위를 기록한 급진좌파연합을 20%포인트 차로 따돌리며 예상 외 압승을 거뒀다.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부도 사태까지 내몰렸던 그리스 국민이 최근 4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친기업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일궈낸 집권당에 대승을 안겼다는 분석이다.

이날 그리스 내무부에 따르면 개표율 99.59% 기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현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은 40.79% 득표를 했다. 2위를 기록한 급진좌파연합의 득표율(20.07%)을 무려 20%포인트 차로 따돌린 것으로, 59개 선거구 중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득표 1위를 거머쥔 압도적인 승리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리스가 민주주의로 전환한 이래 현직 정부가 거둔 최고의 선거 성적"이라고 전했다.

투표일 전날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에서 신민당의 승리는 불투명할 것으로 점쳐졌다. 지난 2월 발생한 최악의 라리사역 열차 사고와 지난해 불거진 야당 후보 도청 스캔들 등 겹악재가 닥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결과 유권자들은 여러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을 최우선 순위로 삼아 집권당의 과감한 개혁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는 오랫동안 '유럽의 문제아'로 불렸다. 복지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도했던 포퓰리즘이 화근이었다. 1981년 좌파 사회당을 이끈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당선을 기점으로 파격적인 복지정책이 실시됐다.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중·고등 교육 무상 제공, 연금 지급액 인상에 그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 무상의료 혜택까지 제공했다.

쌓여가는 재정적자는 국가부채로 충당했다. 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높아져 갔지만 정당을 막론하고 '대수술'을 감행하려는 이는 없었다. 과도한 정부 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그리스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전후로 해운, 관광 등 주력 산업들의 몰락과 함께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2013년에 이르러서는 연간 실업률이 27%대에 육박했고 2015년에는 결국 국가부도를 맞게 됐다.

2019년 집권에 처음 성공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고강도 긴축 정책을 통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공공 부문 임금부터 대폭 삭감했다. 또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적됐던 무상 의료와 소득대체율 90%의 연금제도에 대해 대수술을 감행했다. 부채비율도 2020년 206%에 달했으나 지난해 171%로 끌어내렸다.

이 같은 쇄신은 해외 자본을 다시 끌어들여 경제 회복의 마중물이 됐다. 해외 교역량도 점차 늘어났다. 2021년 기준 그리스의 상품 수출 규모는 2010년 대비 90% 늘어났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8.4%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던 2022년에도 5.9%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실업률 역시 2013년 27%대에 비해 2배 이상 줄어들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미국 명문 하버드대를 나와 컨설팅사 맥킨지와 영국 체이스은행 등 금융계에서 경력을 쌓은 친시장주의자다.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체제 아래에 놓였던 2013~2015년 개혁행정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공공 부문 일자리를 대폭 감축한 전력이 있다.

신민당은 기록적인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과반 확보는 실패해 7월 초 2차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단독 정부를 선호한다고 거듭 밝혀온 만큼 연정 협상 가능성은 낮다. 선거법에 따르면 2차 선거는 1차 선거와 달리 득표율에 따라 최대 50개의 보너스 의석을 챙길 수 있어 신민당으로선 이 기세를 몰아 2차 선거에서 단독 과반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 한편 친시장 성향의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의 압승에 그리스 주식시장은 급등세를 보였다. 이날 아테네 증권거래소(ASE) 종합지수는 개장 직후 급등해 정오 기준 전일 대비 7.3% 상승한 1213을 기록했다. ASE지수가 1200선을 돌파한 것은 2014년 이후 약 9년 만이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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