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전세를 폐지하자는데…
지난 대선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장동 일타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복잡한 도시개발구조를 쉽게 풀어내는 능력은 뛰어났다. 그런 그가 "전세제도는 수명이 다했다"며 '전세폐지론'을 들고나왔다. 원 장관은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그의 발언은 공무원의 의지 표명일까 아니면 정치인의 '레토릭(수사)'일까.
전세는 전 세계에서 거의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사금융이다. 사금융 특유의 취약성에 꽤 노출된 구조인 건 맞는다. 보증금을 고스란히 통장에 넣어놓는 집주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집주인이 새로 세입자를 받아 그 돈으로 기존 전세금을 돌려주는 문화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수십 년 넘게 제도가 존속한 것은 큰 틀에서 사고가 나지 않을 거란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돌아가던 전세제도가 단기간에 망가진 건 '정부 실패'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임대차3법 여파로 폭등한 전세금이 곳곳에서 '역전세난'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부 빌라업자들이 "은행 가서 전세대출 받아오시라"고 순진한 신혼부부를 꼬셔 전세금 바가지를 씌웠다. 한 감정평가사는 "신축 빌라 감정을 나가보니 건물에 설정된 보증금의 합이 건물 가치를 넘기는 사례가 허다했다"고 말한다. 매매가 추정이 어려운 점을 노려 전세금을 적정 시세보다 올려받는 사기를 친 것이다.
문제는 '전세'라는 제도가 아니라 전세에 거품을 만든 잘못된 정책이다. 핵심은 위험한 전세 거래를 최대한 막는 데 있다. 퍼주기식 전세자금대출 문턱을 높이고, 누구나 빌라 매매가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매매가와 전세금이 붙어 위험해 보이는 거래는 자연스레 퇴출되고 보증금은 적정 수준까지 내려올 것이다. KB금융지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세가 주거 유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5%에 달한다. 전세가 사라지면 집주인은 갑자기 어디서 목돈을 만들어 돌려준다는 얘기인가. 시장에서 원 장관 발언을 '레토릭'이라 평가하는 것에 좀 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홍장원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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