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안전한 노후자금, 넛지가 필요하다

2023. 5. 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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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때 퇴직연금 못 쓰게
옮긴 회사로 계좌 넘겨주고
급전은 비상저축계좌로 대비
자녀 대학교육 위한 저축금
은퇴 계좌로 옮길 수 있게

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연금보고서(Pension at a Glance) 2022'는 2020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며 OECD 국가의 노후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정보가 가장 눈에 띈다. 첫 번째는 법에 정해진 은퇴연령과 실제로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나이다. 한국은 평균으로 정해진 은퇴연령보다 약 5년 정도 노동시장에 더 머무른다고 한다.

두 번째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퇴직연금을 포함한 사적연금 그리고 보유한 자산과 일해서 얻는 임금이 각각 얼마나 노후 재정에서 사용되는가이다. 해당 통계는 다소 충격적인데 연금으로 채워지는 부분이 25%를 약간 넘고, 나머지는 자산과 노동으로 채워졌다. OECD 평균에 상당히 못 미치는 숫자다. 물론 OECD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의 노후에서 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역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로 2022년 12월 시행된 노후준비지원법 그리고 2004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2022년에 상당히 개정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보다 거의 30년 앞서 3중 연금제도를 구축한 미국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통합세출법의 일부인 '시큐어 2.0'을 통해 국민의 노후준비를 위해서 92개의 새로운 조항을 만들었다. 이 중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언급해 보겠다.

첫 번째로 새로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회사들은 직원들이 퇴직연금에 자동으로 가입하도록 해야 하고, 2025년부터 임금의 최소 3%를 적립하도록 했다. 또한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길 때 자동으로 퇴직연금 계좌가 옮겨지도록 했다. 보통 퇴직연금 계좌에 충분한 자금이 있지 않은 비교적 낮은 임금의 근로자들이 직장을 옮길 때 돈을 인출해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두 번째는 비상저축계좌(emergency savings account)를 만들어 매년 최대 2500달러까지 적립할 수 있도록 했고, 중도 인출 시 페널티가 있는 퇴직연금과는 달리 페널티 없이 네 번까지 인출이 가능해 갑자기 돈이 필요한 경우에 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세 번째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학자금이다. 직원이 학자금을 갚을 경우 이에 매칭해 퇴직연금에 적립시켜주는 제도가 마련됐다. 학자금을 갚아 나가는 동안에도 은퇴를 위한 저축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 네 번째는 부모가 자녀의 대학 교육을 위해 529 플랜이라 불리는 계좌를 만든 후 15년이 지나면 최대 3만5000달러까지 자녀의 은퇴계좌로 자금을 이체할 수 있도록 했다. 상당히 특이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육용이라는 제약을 가진 자금을 은퇴 자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네 가지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퇴직연금 가입자들, 특히 저임금 근로자들의 은퇴자금 마련에 방해가 되는 행동 패턴을 알고 마련한 제도이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투자할 자산을 선택하지 않고 퇴직연금을 현금으로 놔두었을 때 보편적인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인 '디폴트'에 자동으로 투자하도록 한 장치처럼 정부가 제대로 만들어주어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까지 커버할 수 있도록 2중, 3중으로 보완한 제도이다. 세 번째, 네 번째는 은퇴 준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교육과 관련된 비용에 대한 제도이다.

좋은 법과 제도가 있어도 사람들이 실제로 이를 사용하지 않는 경험을 수없이 봐왔다. 노후를 위한 법과 제도 역시 이런 점을 감안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SKK GSB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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