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의 `육참골단` 전략?...바흐무트 90% 주고 `러 발묶기` 성공

박양수 2023. 5. 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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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바흐무트 탈환전 2단계 개시할까
'아주 작은 부분' 붙들고 있으면서 "러군 에워싸는 중" 반격 의지
10개월간 상대 발 묶으며, 자원·병력소진 끌어낸 것은 '성과'
서방 매체 "함락 사실이어도 전략적 가치 없다" 평가절하
러시아 바그너 용병대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곳곳에서 연기가 치솟는 바흐무트. [AP=연합뉴스]

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 전략일까. '육참골단'은 흔히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야 할 때 취하는 싸움 전략 중 하나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와도 의미가 통한다.

우크라이나가 10개월간 이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 시가지 대부분을 러시아에 빼앗겼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함락은 아니다"라고 큰소리를 치며,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바흐무트 전투의 와중에 얻은 것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한테서 직접 지원은 아니지만, F-16 전투기 조종 훈련 지원을 얻어낸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F-16과 같은 신형 전투기가 필요하다면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 지원을 요청했다. 최근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연합을 통한 지원에 나섰고, 그간 미온적이던 미국과 이번 G7 정상회담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 참석을 계기로 지원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최근 바흐무트 지역에서의 패배 와중에 벌어진 일들이다.

서방 매체들도 바흐무트 지역을 완전 장악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별다른 전략적 의미를 얻지 못한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준비해 온 봄철 대반격의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기대 섞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AP·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다수의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은 현재 러시아가 바흐무트 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비록 바흐무트 주요 지역의 통제권이 상대에게 넘어갔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면서도, 아직 도시를 되찾을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전망이 뒤섞인 분위기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오늘 러시아군은 바흐무트에 있다"면서도 "오늘 바흐무트는 러시아에 점령된 상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도 바흐무트 지역에 대해 "유의미하지 않은 지역"이라고 자평했지만, "상황이 바뀔 경우 다시 도시 중심부로 진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바흐무트 주변 일부 고지대를 중심으로 상대 병력을 반원 형태로 에워싸는 대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진퇴를 거듭하면서도 교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작년 7월부터 바흐무트 공략을 시작한 러시아군의 발을 묶어둠에 따라, 다른 방면으로의 진격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지역에서 특수부대를 지휘해온 예우헨 메제비킨 대령은 "상대를 지치게 한 다음 공격한다는 것이 주요 개념"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 측면에서 저항을 지속해온 데 대해 "러시아군이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계속 할당하도록 몰아세운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지휘부가 의도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사전략을 연구하는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필립스 오브라이언 교수는 "러시아군의 대오가 생각보다 약했고, 우크라이나가 이를 파고드는 모양새였다"며 "러시아군은 엄청난 손실을 봤고, 바흐무트에서 너무 지쳐버려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끈질긴 항전으로 러시아군의 진을 빼는 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점령군을 자국 영토에서 몰아내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준비해 온 이른바 '대반격' 작전을 위한 환경도 무르익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은 작년 여름에도 러시아군의 전력이 고갈된 틈을 타 대대적인 반격을 펼쳐 동북부 하르키우주를 수복한 데 이어 남부 헤르손주의 주도 헤르손시를 탈환하는 대승을 거둔 바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측도 이 지역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게 사실이다.

의용병 대대 지휘관인 타라스 데이아크 "바흐무트에 머무르며 적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였다"면서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돌아봤다.

바흐무트 점령은 지난 겨울 이렇다 할 승전보를 받지 못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장에선 오랜만에 대내외에 내세울 만한 전공을 거뒀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물량공세에 밀려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를 내주게 된다고 해도, 러시아가 특별히 유리해지는 건 아닐 수 있다.

서방 언론과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것에 비해 바흐무트의 전략적 가치가 크지 않다고 평가해 왔다. 로이터는 "러시아 정부는 바흐무트를 점령하면 자국 합병을 선언한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산업지대에 더욱 깊숙이 진격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바흐무트에는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ISW 분석가 카테리나 스테파넨코도 "푸틴의 의도와 달리 도네츠크 점령이 꼭 돈바스 장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20㎞ 밖 슬라뱐스크나 코스티안티니우카 방면으로부터 더욱 치열한 전투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세계 제2의 군사강국이라는 러시아는 아무런 전략적 가치가 없는 자그마한 탄광촌을 장악하려다 엄청난 자원이 고갈되고 병사 수만 명을 잃게 됐다"며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을지라도, 이는 아주 작은 승리에 불과할 것"이라고 짚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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