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플랫폼 모두 ‘불만’ 터트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안…약이 될까 독이 될까

김향미·민서영 기자 2023. 5. 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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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놓고 주요 이해당사자인 의약계와 플랫폼이 모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의약계는 “문턱을 더 높이라”고 하고, 플랫폼 업계는 “규제를 더 풀어라”라고 한다. 양측은 각각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업계 생존권과 결부돼 있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시범사업 시행 전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인데 양측의 견해차를 어떻게 조율할지 이목이 쏠린다.

쟁점 ① 비대면 진료 대상 환자군

가장 큰 쟁점은 ‘대상 환자군’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의힘이 지난 17일 발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초안)을 보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환자는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다.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 기타질환자는 30일 이내 대면진료 경험이 있을 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섬·벽지 거주자, 거동불편자(65세 이상·장애인), 감염병 확진자 등은 초진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지침을 제시했다. 18세 미만 환자는 공휴일, 야간에 한해 초진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뒤 보류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3개 의약단체는 지난 19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의약계와 세부적 논의 없이 나와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소아·청소년 환자는 표현이 서툴고 증상이 비전형적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도 초진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도 같은 날 별도의 성명을 내고 정신질환자 특성상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시법사업을 비판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22일 기자와 통화에서 “의료계가 제기한 안전성 우려 부분을 해소하기는커녕 증폭한 시범사업안이 나와 의료현안협의체 등을 통해 실무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업계는 ‘재진 환자 원칙’에 강하게 반발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에 내린 사형선고”라고 했다. 코로나19 유행기에 성장한 플랫폼 업체들은 대상 환자군이 줄어들면 그만큼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산협 측은 “시범사업안은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맞벌이 부부(소아 환자) 등 수요층의 선택권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신영 원산협 홍보담당(닥터나우 홍보총괄이사)은 기자와 통화에서 “지난 3년간 병원 쏠림, 의약품 오남용, 의료사고 등 비대면 진료에 대해 우려하던 일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 (한시적 허용) 기존 비대면 진료 틀을 유지하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쟁점 의약품 수령 - 약 배송

시범사업안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환자를 진료한 뒤 처방전을 환자가 지정한 약국에 팩스나 e메일로 보낸다. 환자나 보호자가 해당 약국을 방문해 조제된 약을 받으면 된다. 정부는 감염병 환자나 거동불편자를 위해 ‘재택 수령’, 즉 약 배송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약사들은 약 배달 사고나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약 배송을 반대한다. 또 병·의원 인근에 자리 잡고 대면진료 환자를 기다리는 약국에는 경영상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본다.

원산협은 “동일한 약을 반복 처방받는 만성질환자도 대면으로 수령하도록 강제한 것은 그 자체로 의료접근성 증진이 목적인 비대면 진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신영 이사는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한다면서 나가서 약을 타오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플랫폼을 통해 심야약국 등 소비자 편의와 약국 수익창출 방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쟁점 ③건강보험 재정 추가 투입

정부는 일반진료 수가(의료행위의 대가)에 시범사업 관리료를 가산해 비대면진료 수가를 정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코로나19 때 적용한 비대면진료 수가는 일반진료 수가의 130% 수준이었다. 복지부는 오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비대면 진료의 수가에 관해 보고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단체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해 일반진료보다 높은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비대면 진료는 산업계의 수익창출 요구에 따라 시도하는 시범사업이다. 의료사고 및 오진 위험성이 존재하는데 그에 대한 책임은 플랫폼 업체가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판단도 의사단체와 유사하다.

반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더 높은 수가를 받아야 하는 근거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선 일반진료와 수가가 같다.

40여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6일 성명에서 “정부가 플랫폼 기업의 마진(이윤)을 챙겨주고 의사들이 더 많은 비대면 진료를 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수가를 올리려고 한다”며 “비대면 진료 수가가 대폭 인상되면 의료비 폭등을 낳고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비대면 진료보다는 공공의료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며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 팬데믹 ‘비대면 진료’ 일상회복해도 그대로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05172146015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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