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은 고깃집 사장님…‘은퇴’ 홍상삼 “공황장애 3년 너무 아까워, 재밌게 야구했던 선수로 기억되길” [MK인터뷰]

김근한 MK스포츠 기자(forevertoss@maekyung.com) 2023. 5.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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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하면서 굴곡 있는 야구 인생이었다. 그래도 오랜 기간 해왔던 야구를 내려놓는 것에 후회는 단 1도 없었다. 투수 홍상삼이 정들었던 야구공을 놓고 집게를 든 고깃집 사장님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충암고 출신으로 2008년 두산 베어스 신인 2차 20번째 지명으로 입단한 홍상삼은 자신의 장점인 강속구를 앞세워 2009년 빠르게 1군 무대를 밟았다. 1군 초기 선발 투수 역할을 주로 맡았던 홍상삼은 2012시즌 불펜 전환 뒤 시즌 22홀드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홍상삼은 부침을 거듭했다. 2013시즌 포스트시즌에서 역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홍상삼은 2014시즌부터 2019시즌까지 좀처럼 자신의 폼을 되찾지 못했다. 결국, 정들었던 두산을 떠나 2020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2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로 반등하는가 싶었던 홍상삼은 2022시즌 중반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

현역 은퇴를 결정하고 고깃집 사장님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홍상삼이 인생 마지막 야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가산동)=김근한 기자
제2의 인생 도전과 더불어 야구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홍상삼은 고민 끝에 가산디지털단지역 앞에 고깃집을 개업했다.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꽤나 호평이 쏟아지는 분위기인 가운데 야구팬의 성지가 되길 바라는 게 ‘고깃집 사장님’ 홍상삼의 바람이다. MK스포츠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홍상삼의 인생 마지막 야구 얘길 들어봤다.

이제 야구공이 아닌 집게를 든 고깃집 사장이 됐습니다. 어떻게 고깃집 개업을 결심했습니까.

지난해 유니폼을 벗은 뒤 계속 제2의 인생을 고민했습니다. 아무래도 돈을 가장 잘 벌수 있는 게 고깃집 같아서 동생과 함께 준비했고요. 고기 유통업 쪽에 있는 분도 소개받았는데 도움을 받으면서 얼마 전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고깃집 이름은 고기 육(肉)과 길 로(路) 자를 써서 ‘육로’라고 지었습니다(웃음).

개업한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부터 리뷰에서 좋은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맛있다고 하시는 손님들도 계시고 아쉽다고 하시는 손님들도 있으시더라고요. 호불호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이 꽤나 많이 오셔서 감사하더라고요. 야구를 엄청나게 잘했던 선수도 아닌데 기억해주시고 여기까지 찾아와주시니까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인생 첫 사회생활도 남다르게 다가왔겠습니다.

너무 힘든 건 사실입니다. 야구가 더 쉬운 건 맞고요(웃음). 아무래도 바로바로 손님과 소통하고 반응을 해야 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주로 카운터를 보면서 뒷받침해주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해 팀을 떠난 시점이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언제부터 은퇴를 생각했습니까.

지난해 팀을 떠났을 때는 야구를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야구 쪽에 아예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오랜 기간 해온 야구라서 조금 질렸다고 봐야 할까요. KIA에 있을 때도 내내 고민하던 부분이었죠. 미래가 안 보이니까 빨리 야구를 접고 다른 일을 찾아보겠단 마음이 커졌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서 나름대로 홀가분하게 관둔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현역 연장에 미련이 더 크기 마련인데 반대군요.

두산에서 방출됐을 때도 이미 야구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원석이 형이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보고 그만두라고 말리셔서 KIA에 입단했던 겁니다. 1군에서 못 살아남는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빨리 나와서 다른 일을 찾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KIA에 있을 때 오히려 기회가 바로 와서 야구가 더 잘 풀린 셈이죠. 그러니까 야구가 어렵고 잘 모르는 겁니다(웃음).

홍삼삼의 두산 시절 투구 장면. 사진=김재현 기자
2008년 두산 입단 때 기억이 납니까. 2009년에 곧바로 1군 무대로 올라가 선발 등판 기회를 자주 받았습니다.

그때는 젊은 패기가 있었습니다(웃음). 프로 1군 무대가 엄청난 벽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 무섭거나 두려운 게 없었던 시절이었죠. 입단 2년 차 때 우연히 선발 등판 기회를 받기 시작했는데 운이 좋았어요. 데뷔전이 롯데 사직 원정으로 기억나는데 불펜에서 불이 아예 켜지지 않아서 불펜 피칭도 제대로 못하고 올라갔습니다. 안 좋은 징조보단 액땜했다는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고, 운이 계속 잘 따라왔어요.

2010시즌에도 선발 등판을 이어갔지만, 그 기점으로 꾸준함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때 갑자기 구속을 줄이고 제구를 잡으려고 했는데 제 장점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전반기 때 안 좋다가 후반기 때부터 그냥 원래대로 하자고 해서 조금씩 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진욱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 불펜으로 전환을 결정했죠.

2012시즌 때 22홀드를 달성하면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듭니다. 그해 평균자책 1.93 WHIP 0.98로 커리어에서 가장 안정적인 투구까지 보여줬습니다.

김진욱 감독님께서 원체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니까 저도 덩달아 야구가 잘 풀렸습니다. 2군에서부터 감독님과 같이 있다가 1군으로 갔는데 긴장감보다는 편안하게 즐기는 야구가 가능해지더라고요. 분위기를 잘 타는 편이라 좋은 팀 분위기 속에서 저도 기복이 줄었죠. 매일 매일 등판하는 불펜의 역동적인 면도 개인적으로 선호했습니다. 저와 선발은 안 맞겠다는 걸 깨달았죠.

2013시즌 홍상삼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LG 트윈스와 플레이오프 1차전입니다. 당시 경기 중반 마운드에 올랐을 때 상대 팀 팬들이 환호한 게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마운드에 올라갔는데 오히려 두산 팬들은 야유, LG 팬들은 환호를 하시니까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저에게 그렇게 하시는 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느낌으로 던졌는데 결과가 좋았습니다. 속으로 뿌듯했죠(웃음).

2013년에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준플레이오프 당시 넥센 히어로즈와 목동구장에서 나온 고의4구 폭투였습니다. 이제 자동 고의4구 규정이 생겼기에 보기 힘든 장면이 됐습니다.

당시 제 공이면 상대 타자들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믿었으니까 마운드에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박)병호 형 타석 때 고의4구 사인이 나오니까 왜 볼넷을 줘야 하는지 아쉬운 감정이 컸어요. 그런 마음으로 던지다 보니까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공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죠. 그때 (양)의지 형이 고생을 꽤나 했죠. 저 덕분에 웬만한 공은 다 잡을 겁니다(웃음).

홍상삼은 두산 시절인 2013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흔치 않은 고의4구 폭투를 범하는 장면을 남겼다. 사진=김재현 기자
이후 군 문제를 해결한 뒤 2016시즌 막판 팀에 합류했습니다. 팀 복귀 뒤 잠실 삼성전에서 세이브를 했을 때 두산 팬들의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2013시즌 포스트시즌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팬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막 제대하고 올라온 1군 마운드라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막상 나가라는 얘길 들었을 때는 재밌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아마 타석에 지금 이승엽 감독님을 상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강타자를 상대하니까 더 세게 붙자는 생각으로 던져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던 듯싶어요.

2016시즌 막판 대전 한화전에서 더스틴 니퍼트의 시즌 22승 기록이 걸렸던 경기는 반대로 악몽으로 끝났습니다. 9회 블론 세이브로 아쉬움을 남겼어요.

그때 상대 타자가 친 타구가 분명히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애매한 위치에 떨어져서 안타가 됐습니다. 끝났어야 할 상황이 출루로 이어지니까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집중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다시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던 시기죠. 팀과 니퍼트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2016시즌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 우승반지를 꼈습니다.

당시 선발 투수들이 너무 잘 던지니까 한국시리즈에서 던질 기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승해서 당연히 기분이 좋았지만, 주축으로 뛰어서 힘을 보탰다면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도 우승반지 하나는 끼고 은퇴해서 다행이죠. 등번호 27번이라 아쉽긴 한데 우승반지 하나 있는 게 어디겠습니까(웃음).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1군 등판 기록 자체가 확 줄었습니다.

김태형 감독님께서 기회를 자주 주셨습니다. 강속구 투수를 선호하시니까 어떻게든 저를 살리려고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때 심리적으로 가장 흔들린 상태라 3년 동안 너무 힘들었죠. 제가 그 기회를 못 살린 게 죄송했습니다.

당시 기간에 공황장애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돌이키면 그 3년의 세월이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스스로 멘탈을 잘 다스렸으면 더 좋게 야구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저 자신을 너무 억눌렀어요. 알아서 제 멘탈을 잘 돌볼 줄 알았다면 더 길게 야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떻게든 극복했어야 했는데 스스로를 너무 빨리 포기했던 듯싶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가장 컸습니까.

불펜에서 준비하는 과정부터 너무 힘들었습니다. 벤치에선 기회를 주시려고 하는데 제가 준비를 제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자꾸 도망가려고 했죠. 그 상황을 피하기만 한 겁니다. 그냥 거기서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그냥 나가서 던졌다면 몰랐는데 그게 안 됐기에 참 아쉽네요.

홍상삼은 KIA로 이적해 반등하면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를 달성했다. 사진=김재현 기자
2020시즌을 앞두고 KIA로 이적한 게 전환점이 됐습니까.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바뀌니까 생각에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거기서도 안 되면 빨리 그만두자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부담감이 사라지니까 공이 잘 들어가기 시작했죠.

정명원 코치와 재회도 있었습니다.

두산에서 어린 시절부터 저를 지켜보시고 잘 알고 계시니까요. 오랜만에 뵈니까 성격이 옛날 같지 않으시고 정말 부드러워지셨더라고요(웃음). 이런 상황에서는 혼쭐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웃음). 확실히 코치님과 함께 있으니까 긍정적인 효과를 크게 봤습니다.

KIA에서 3년은 어떤 추억으로 남았습니까.

광주에서 3년이 정말 행복했고 재밌었습니다. 응원해주신 KIA 팬들에게도 감사드리고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야구선수 홍상삼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시간이라 의미가 큰 듯싶습니다.

야구팬들이 보기만 해도 좋아하는 ‘뭐야’ 짤도 화제였습니다.

(한)승택이가 사인을 보냈는데 진짜 처음 보는 사인이라 저도 모르게 ‘뭐야’라는 말이 나왔습니다(웃음). 사인을 다 알고 있었는데 서로 어리둥절한 상황이 된 거였죠. KIA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야구팬들도 엄청 좋아해주신 짤인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웃음). 저는 항상 어떤 방향이든 이슈가 크게 되는 선수인가 싶습니다.

2013년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당시 팀 동료들과 기뻐하는 홍상삼. 사진=김영구 기자
아무래도 야구 인생 동안 대표적인 ‘짤’을 많이 남겼습니다.

중계 화면에서 나온 ‘홍삼’ 짤도 그렇고요(웃음). 투구할 때 하늘을 쳐다보는 사진도 저만 유독 부각이 됐어요. 보통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라면 보통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제 사진만 더 이슈가 되더라고요. 뭔가 저에게 웃긴 상황도 더 자주 만들어지고, 안 좋은 상황이 더 부각되는 느낌이라 힘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애증’의 관계였던 두산 팬들에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까.

제가 기복이 심하니까 두산 팬들도 애증을 크게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당시엔 조금 섭섭한 마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다 애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고깃집을 열고나서 어떻게 알고 찾아와주시는 두산 팬들이 보면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뛰는 선수들도 야구를 그만 두게 되면 알 겁니다. 팬들의 쓴 소리도 애정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요. 팬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더 느꼈으면 좋겠어요.

야구선수 홍상삼이 팬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까.

무언가 투수로서 실력보다는 재밌게 야구한 선수로 기억해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듯싶습니다. 무엇보다 벌써 제 가게에 찾아와 주시고 어떻게 또 알아봐주시면서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가게가 야구팬들의 성지가 됐으면 합니다(웃음). 야구선수가 아닌 제2의 인생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두산 팬들에게 추억으로 남을 양의지와 홍상삼 배터리. 사진=MK스포츠 DB
[가산동(서울)=김근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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