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의 시론]무너지는 NPT… 핵능력 보유 나설 때다

2023. 5. 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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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이란 맞서 사우디 핵개발 행보
美 대신 中과 손잡으며 가속화
다른 권위주의 나라로 번질 것
한미 핵우산 강화만으론 부족
‘포스트 NPT’ 적극 대비 필요
日 수준 역량 보유가 1차 과제

주요 7개국(G7) 정상이 히로시마(廣島)공동성명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국제 비확산 체제의 토대로 규정하며 핵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NPT 체제 붕괴 기류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러시아가 핵무기 양산 수순에 접어든 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도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 겸 총리는 OPEC+(플러스)와 손잡고 최근 잇달아 원유 감산 조치를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대미(對美)시위 성격이 짙다. 최근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6월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찾는 배경이다.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 이면엔 핵 문제가 있다. 사우디는 10여 년 전부터 미국에 원자력 협력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국무부는 농축 및 재처리 금지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 관계는 점점 더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에서 아브라함 협정을 밀어붙일 때 사우디는 핵 협력을 참여 조건으로 제기해 일부 진전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없던 일이 됐다.

그러자 MBS는 중국으로 눈을 돌려 지난해 12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핵 협력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사우디는 올 초 우라늄 채광 및 우라늄 농축 원전 연료 수출 계획을 밝혔다.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의 길을 걷겠다는 뜻이다. MBS는 “이란이 핵을 가지면 사우디도 가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시아파 종주국이 핵을 갖게 되면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도 가져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란의 핵 개발을 보며 조급해진 것이다.

1970년 NPT 발효 후 미국은 비확산 중심의 외교정책을 견지했지만, 그 과정은 실패였다. NPT 전 핵 개발을 한 이스라엘을 논외로 하더라도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이 NPT 밖에서 핵 보유에 성공했다. 중국의 지원에 힘입어 사우디가 핵무기를 갖게 되면 남미·아프리카 국가도 잇달아 중국에 손을 벌릴 것이다.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한국 등 자유 진영이 중국 도움으로 핵무장에 성공한 권위주의 진영의 핵 협박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달 정상회담 때 발표한 워싱턴선언에서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를 천명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회담 전 브리핑에서 “한국이 비핵 국가 지위(non nuclear status)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핵우산 강화는 한국이 핵무장을 않는다는 약속과 맞바꿔진 것이란 주장이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대 강연 때 “한국도 1년이면 핵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선언에선 비핵 국가 지위를 받아들였지만, 필요한 상황이 오면 핵 개발을 하겠다는 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사시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잠재적 핵 능력 개발을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일본은 6개월 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비핵 3원칙을 준수하면서도 미·일원자력협정을 통해 플루토늄 재처리 등으로 핵무기 원료를 확보해둔 덕분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1년 내 핵 제조’가 현실화하려면 NPT 회원국으로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칙을 준수하며 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 임기 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인프라 구축부터 해야 한다.

중국의 비협조로 이미 글로벌 비확산 체제는 무너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보수 성향의 미국 외교전문가 월터 러셀 미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의 역대 대통령들이 비확산 체제를 지키지 못한 탓에 ‘포스트 NPT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북한·이란에 소극 대응하는 바람에 독재 국가들의 핵 무장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유 진영에만 엄격하게 비확산 규범 준수를 압박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선언 후 일부 전문가는 자체 핵무장론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잠재적 핵 능력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미국이 진심으로 한국 안보를 걱정한다면 한국이 일본 수준의 핵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원자력협정 개정 등의 조치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핵 능력 확보는 워싱턴선언을 보완하며 유사시를 대비하는 최적의 보험이자 중국을 정점으로 한 권위주의 독재 국가의 핵 무장에 맞서 자유 진영을 지키는 최후의 보검(寶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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