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막대한 재정 퍼붓고도 출산율 ‘0.78’… 실효 못거둔 ‘280兆’[문화미래리포트 2023]

조재연 기자 2023. 5. 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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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미래리포트 2023 - 인구, 국가 흥망의 열쇠
(6) 저출산 정책 ‘수술’ 시급
2005년 ‘저출산 기본법’ 제정
2006~2010년 20조로 시작
투입 예산 연평균 5.9% 증가
2021~2025년 273조 들 듯
예산, GDP 2.25%에 달하지만
돌봄지원비중 OECD평균 미달
신혼부부 등 청년예산이 51%
영유아 예산, 22%로 뒤 이어
교육부 ‘그린스마트 스쿨’ 등
저출산 무관 사업들도 포함돼
정책효과 분석·구조조정 필요
그래픽 = 권호영 기자

280조와 0.78. 극명히 대비되는 이 두 수치는 한국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상징하는 숫자가 됐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난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해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왔지만, 정작 출산율은 잠시 반등하나 싶더니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출산율 감소를 겪으며 최악 수준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지난 16년간 28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저출산 정책을 냉정하게 다시 평가하고,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0.78명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더라도 2013년 이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쯤 되면 ‘280조 미스터리’다. 저출산 해법에 쓰였다는 280조 원은 과연 어디에 쓰였을까.

◇17년간 332조, 4차 기본계획에 273조 예정 = 실제로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에 투입된 예산은 280조 원보다 더 많다. 자주 언급되는 280조 원은 2021년까지 쓰인 예산의 합계이기 때문이다. 최병권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장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3회 국가현안 대토론회 ‘저출산 대응 정책: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저출산 대응 예산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32조 원 규모에 달했다. 중앙정부 예산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매칭 지방비, 교육재정교부금 등이 포함된 액수다.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년) 당시 20조 원으로 시작해 제2차(2011∼2015년) 기본계획에는 61조 원, 제3차(2016∼2020년) 기본계획에는 153조 원이 쓰였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 동안 인구정책의 근간이 되는 제4차 기본계획에는 약 273조 원이 들 예정이다. 2021년 49조7000억 원, 지난해 51조7000억 원이 쓰였고 그 이후에도 연평균 5.9% 증가한다는 가정에 따른 숫자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저출산 대응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25%(2021년 기준)에 달하지만, 육아휴직·보육지원·아동수당·보육 및 돌봄 지원 등 ‘가족예산’은 GDP 대비 1.56%(2019년 기준)로 OECD 평균 2.29%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가족예산 가운데서 아동수당·육아휴직급여 등 현금 지급 기준으로만 보면 0.32%로 OECD 평균(1.12%)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기획단장은 지난 1월 나온 ‘2023년 인구정책의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2019년 기준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2.2%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프랑스(31.0%)와 독일(25.9%)의 절반 이하”라며 “더욱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 4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별관에서 열린 2030청년 200인 ‘청출어람단’ 저출산 정책제안토론회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 예산이 절반 이상, 주거 지원 비중 가장 커 = 현재 집행되고 있는 저출산 대응 예산이 주로 겨냥하는 대상은 신혼부부를 포함한 청년층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청년 예산은 51%를 차지해 정책 대상자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영유아 예산이 22.2%, 양육가구 예산이 17.6%로 뒤를 이었다. 저출산 정책이 처음 시행된 2006년만 해도 영유아를 위한 예산이 77%로 대부분이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청년 대상 예산의 비중이 커졌다.

항목별로 뜯어봐도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 많다. 주택구입 전세자금(융자) 9조5000억 원(18%), 다가구 매입임대 출자융자 5조7000억 원(11%), 행복주택(융자, 출자) 2조7000억 원(5%), 전세임대융자(청년, 신혼) 2조5000억 원(5%) 등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처별 예산 비중도 국토교통부(46%)가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영역별로 따져봐도 주거 관련 지원이 23조4000억 원(46.1%)으로 가장 크고 보육·돌봄 11조9000억 원(23.4%), 자녀수당 5조5000억 원(10.9%), 사회환경과 일자리·직장이 각각 2조6000억 원(5.2%) 수준이다.

◇백화점식 대책 지양해야 = 다만 이 가운데는 저출산 대응과 직접적 관련이 없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들도 포함돼 있다. 디지털기기 인프라, 학교 단열성능 개선, 태양열 설치 등 교육부의 ‘그린스마트스쿨 조성’에 들어가는 1조8293억 원, 산학협력 선도 대학 육성사업에 쓰이는 4070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국방부의 군무원·장교·부사관 인건비 증액(987억 원),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 활성화 및 지역문화 진흥·예술가 지원(214억 원), 창업자 육성 사업화·마케팅 지원(2683억 원) 등도 저출산 관련성이 낮은 사업으로 꼽힌다.

결국 명확한 목표나 문제의식 없이 부처별 관련 사업을 한데 모아 ‘백화점식 대책’을 만든 것이 근본적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단장은 “인구변화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정책목표를 설정해 근거 중심으로 정책 효과성을 분석하고, 효과성 있는 정책을 선택해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효과가 모호하거나 미비한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해 저출산과 연관성이 높은 사업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실장은 “아동수당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지만 수혜자의 체감도가 낮고, 해외 주요국과 비교할 때 연령이 제한적이며 8세 이후 양육에 대한 지원은 미비하다”고 밝혔다. 청년·신혼부부 주거지원에 대해서도 최 실장은 “맞벌이 신혼부부 기준소득을 고려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제한적이고, 주택 면적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불일치)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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