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구원할 ‘꿈의 에너지’...한국이 주도할 기회가 있다는데 [미라클레터]
토카막 방식으로 상용화 연구 중
실리콘밸리, 새로운 발전방식에 베팅
한국은 핵융합 스타트업 없지만
한국 기업들도 기회 찾아내야
이번 달부터 미라클레터에 합류하게 된 원호섭 기자입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커피를 홀짝이며 읽었던 미라클레터. 이 레터를 제가 쓰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레터를 읽으며 많은 지식과 인사이트는 물론 한 주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했습니다. 제 레터를 읽을 구독자 분들도 이같이 느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라클레터의 첫 주제로 ‘핵융합 발전’을 꼽았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갑부들이 핵융합에 관심을 갖고 투자한다는 뉴스가 회자됐어요. 한 술 더 떠 한 스타트업은 2028년, 핵융합 발전을 이용해 마이크로소프트(MS)에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가능, 불가능 여부를 떠나 과학자의 리그였던 핵융합이 유명 기업인, 투자자, 일반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 소식에 저는 기대와 함께 두려운 생각이 살짝 들었는데요, 핵융합 발전이 무엇이고, 최근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당신의 심장을 50년은 뛰게 할 수 있는 에너지네요.”
손바닥 크기의 작은 기기가 형광등 켜지듯 몇 차례 깜박이더니 밝은 빛을 쏟아냅니다. 토니 스타크는 잉센에게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게 도와줄 티켓”이라고 말합니다. 기억하시나요. 마블의 대작, ‘아이언맨 1’에서 아크 리액터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아크 리액터가 만들어낸 에너지는 3기가 줄에 달해요. 1초에 3기가와트(G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음을 뜻하는데, 원자력발전소 한 기가 1GW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만큼 아크 리액터의 에너지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이 아크 리액터가 바로 핵융합 발전을 이용해요. 토니는 ‘팔라듐’이라는 원소로 아크 리액터를 만들었는데, ‘아이언맨2’에서는 팔라듐 독성에 노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가 왜 팔라듐을 선택했는지는 조금 뒤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핵융합은 ‘꿈의 에너지’로 불립니다. 핵융합 연료(중수소) 1g으로 석탄 8t에 달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원전과 비교해도 투입 대비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3배 이상에 달합니다. 방사능 누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구요. 상용화만 된다면 인류의 에너지 걱정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핵융합, 그런데 왜 아직 구현 되지 않았을까요.
핵융합 반응은 수소의 원자핵끼리 만나 중성자를 방출하는 반응입니다. 빛의 속도의 70%에 달하는 고속의 중성자 에너지를 열로 바꿔 물을 끓이고, 여기서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 전하를 띄고 있는 원자핵은 서로를 밀어내는 만큼 둘을 합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요. 태양 내부에서는 이 같은 반발력이 무시됩니다. 1500만도의 높은 온도, 2000억 기압이라는 극한 환경 덕분이에요.
안타깝게도(?) 지구의 환경은 온화해서 핵융합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워요.
1500만도의 환경은 인류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2000억 기압’이에요. 어떠한 공학적 설계로도 2000억 기압을 구현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압력을 포기하고 온도를 1억도까지 올려 핵융합 반응을 올리기로 합니다. 다행히도 인류는 온도를 수 억도 이상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거든요.
수소를 높은 온도에 노출 시키면 전자와 핵이 분리되는 ‘플라즈마’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온도를 1억도로 만들면 핵융합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 지구에 1억도에 달하는 플라즈마를 담을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어떤 물체라도 1억도의 플라즈에 닿으면 원자 수준으로 분해되어 버려요. 과학자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플라즈마를 공중에 띄우자”
그렇게 해서 나온 핵융합로 구조가 바로 ‘토카막’ 이에요. 도넛 모양의 공간에 플라즈마를 만든 뒤, 강력한 자석으로 플라즈마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 방식을 ‘자기장 가둠’이라고도 합니다. 1950년대부터 연구가 이어져왔고 많은 연구비가 투입된 만큼 현재 핵융합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방식으로 꼽힙니다.
1년 365일 플라즈마를 가동하려면 플라즈마를 300초가량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요. 한국핵융합연구원은 2026년 300초 유지를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를 기반으로 2040년까지 프로토타입 발전소를 만들고, 2050년 상용화 하는 게 목표입니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핵융합 연구를 진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2050년께 상용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건설 예산만 20조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공정률은 77%. 2026년 첫 플라즈마 점화가 목표에요. 여기서 얻은 데이터는 참여국들이 핵융합 발전소 건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ITER 건설 비용의 약 9%를 부담합니다. 전 세계에서 핵융합 연구를 가장 잘하는 나라가 모여 난제를 해쳐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ITER 역시 토카막 방식의 핵융합로를 사용합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스타트업들이 나타나 핵융합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은 천문학적인 자산을 핵융합에 투자 합니다. 챗GPT를 탄생시킨 오픈AI의 공동창업자인 샘 알트먼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세일즈포스 CEO 베니오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등은 2011년부터 수백억~수천억원을 핵융합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오고 있습니다(기사). 혁신을 통해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이 또 다른 혁신을 핵융합에서 찾고 있는 거에요. 상용화만 된다면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 많은 과학자들이 50년 가까이 노력해 왔는데도 쉽지 않았는데 스타트업은 대체 어떻게 상용화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스타트업들은 토카막 구조에서 탈피하거나, ITER가 설계됐을 당시에는 개발되지 않았던 기술 등을 활용해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이들의 기술을 살펴볼게요.
미국의 핵융합 엔지니어들이 창업한 헬리온에너지는 2024년 세계 최초 핵융합 발전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확보한 자금은 무려 22억달러로 우리돈 2조9000억원에 달해요. 헬리온에너지의 핵융합 방식을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아요. 익숙한 아이언맨으로 준비했습니다.
베이조스가 선택한 제너럴퓨전은 액체금속으로 채워진 원형 챔버를 회전 시켜 가운데 빈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플라즈마를 넣어요. 이어 챔버 외벽을 둘러싼 피스톤이 마치 주사를 넣듯이 압력을 가합니다. 이 충격은 플라즈마로 이어지고, 에너지를 받은 플라즈마에서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스타트업들은 2050년이 아닌, 2030년께 상용화를 말합니다. 헬리온에너지는 2028년으로 호언장담 했구요. 이들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과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10년 전에 “5년 이내에 핵융합 발전을 상용화 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났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지금은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말입니다.
이 얘기가 5년 내에 핵융합 발전 상용화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앞서 소개한 스타트업들은 혁신적인 기술로 토카막 구조를 탈피했지만 플라즈마를 만들고 이를 핵분열까지 이어지게 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투입한 에너지 대비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연구 기간도 짧은 만큼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거구요. 아무리 난다긴다 하는 선수들이 모였다해도 수년 이내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도전, 혁신가들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2050년으로 예정된 상용화 시기는 앞당겨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1942년 엔리코 페르미가 핵분열에 성공하고 난 뒤 10년 만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된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다고 한국이 핵융합 분야에서 마냥 뒤쳐져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겐 1억도의 플라즈마를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 있으니까요. 핵융합 발전 상용화가 가까워졌을 때 이는 엄청난 지식재산권으로 활용될 거에요.
이 뿐만이 아니에요. 핵융합로 건설은 첨단 기술 뿐 아니라 커다란 진공용기와 같이 크고 정밀한 제조업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토카막 핵융합로 뿐 아니라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에요. 현대중공업,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와 같이 커다란 배를 ‘잘’ 만드는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봐요.
ITER는 7개 참여국의 돈을 기반으로 핵융합로 건설에 필요한 설비를 전 세계 기업에게 경쟁입찰 방식으로 수주를 주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과 두산에너빌리티, 국내 중소, 중견 기업들이 이미 6979억원에 달하는 수주잔액을 기록했습니다. KSTAR 건설 예산이 3090억원이었던 만큼 두배 이상 회수(?)한 셈입니다. 다른 나라 기업들이 수주잔액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한국과 핵융합로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이 될만한 국가로는 인도와 중국 정도가 꼽히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실력이 월등히 앞서 있다보니 ‘진공용기’ ‘자석구조물’ 등 핵융합로의 핵심 설비 수주는 한국이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시작된 ITER 수주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은 핵융합로 건설 경험을 쌓아온데다 국내 밸류체인까지 만들어지고 있어요. 전 세계 핵융합로 건설이 확대되는 시기, 마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처럼 설계도를 받은 국내 기업들이 이를 생산해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8년, 한 외국인이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며 인터뷰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경천동지할 일이었죠. 1억도의 온도가 아닌, 상온에서 핵융합에 성공했다면 아크 리액터를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당연히 사기였습니다. 이 외국인은 이미 국내 한 공기업을 속여 세금을 날리게 한 전력도 있었더라구요. 상온에서는 핵융합을 일으킬 에너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이언맨의 아크 리액터가 상온 핵융합 기술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죠. 상온핵융합이 매력적인 기술이다 보니 재미있는 일화가 참 많습니다.
1989년이었어요. 미국 유타대 화학과 교수 마틴 플라이슈만과 스탠리 폰즈가 ‘팔라듐’을 이용해 상온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과 북한에서도 재현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실험 자체가 사기로 밝혀졌죠(이를 따라한 과학자들은 아마 이불킥을 날리지 않았을까요).
토니가 상온 핵융합을 위해 팔라듐을 선택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어요. 팔라듐은 과거 상온 핵융합 실험에서(물론 핵융합은 아니었지만요) 빠짐없이 등장하는 원소입니다. 1989년 유타대 교수들도 팔라듐을 활용했어요.
이유는 팔라듐이 핵융합의 연료가 되는 수소 흡착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제작진이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듯 보입니다. 팔라듐은 한 해 생산되는 양이 약 190t에 불과하지만 촉매로서의 성질이 뛰어나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여러 산업에서 실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이언맨2’에서 토니는 팔라듐 중독으로 건강이 악화됩니다. 이는 영화적 설정일 뿐이에요. 실제 팔라듐은 독성이 거의 없어 치과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거든요. 토니가 팔라듐 때문에 힘들어했던 건, 아마 핵분열 반응과 함께 만들어 진 팔라듐 부산물 때문이 아닌가 해요. 결국 토니는 새로운 원자를 만들어 팔라듐을 대체하는 데 성공합니다. 새로운 원자를 만들 때 사용한 기술은 이온 가속기로 추정되는데, 역시 미라클 레터를 통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간혹 학계에서 상온에서 핵융합이 발생해 중성자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도 합니다. 이는 안정적인 핵융합이라기보다는 ‘확률적으로’ 일부 핵변환반응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어요.
상온 핵융합을 연구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구글도 하고 있어요(기사). 혁신이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올 수 있으니까요. 다만 지금 당장 상온 핵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멀리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NASA의 도전은 ‘달’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많은 기술이 개발됐고 이로인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나아졌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병원의 필수품이 된 적외선 체온기는 NASA가 행성의 지표 온도를 측정하는 연구에서 스핀오프 된 기술이에요. 적외선 체온기로 인류는 교차 감염을 줄일 수 있었고 신생아,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의 체온도 측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무선청소기, 즉석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기술이 우주기술에서 파생돼 우리 삶에 쓰이고 있어요.
2020년, 미국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용 인공호흡기가 부족하자 NASA는 부품을 줄이고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생산 가능한 인공호흡기를 37일 만에 개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의 핵융합 투자에 두려움을 느낀 이유에요. 그들이 투자한 수백억, 수천억원의 돈은 공중분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다른 기술이 또다른 혁신을 만들어 낼 겁니다. 핵융합은 인류가 만든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만큼 더 큰 혁신이 돌아올 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는 리스크를 지면서 핵융합에 마음껏 투자할 수 있었던 혁신가들의 손에 들어갈 거에요. 혁신이 혁신을 낳는 시대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첫 레터, 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에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보다 임팩트한 내용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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