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재파일] "무죄, 조작 증거 가능성"…보훈장관 후보자가 구속했던 보훈가족의 물음
"아버지가 베트남 전 참전 유공자시거든요. 강한 분이셨는데, 제가 무죄 나오는 날 우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우는 걸 그때 처음 봤습니다. 그 일을 겪었지만 제가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은 아니고 이후 공직자로서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누구로부터 사과는 물론 유감 표명도 들은 바가 없는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지난 2006년 11월 3일, 법조브로커 김홍수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김 모 씨는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국회 보좌관이던 김 씨에게는 브로커 김홍수로부터 정치권 로비 대가로 7억 원 가까운 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당시 검찰이 제시했던 핵심 증거는 법조브로커 김홍수의 진술과 그가 작성한 다이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홍수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관계와 맞지 않고, 무엇보다 핵심 증거인 김홍수 다이어리가 "사후에 인위적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 3심의 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명은 벗었지만, 재판을 받으며 5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가까운 친구와 지인 모두 김 씨에게 등을 돌렸고 직장도 잃었습니다. 월남전 참전 유공자이자 고엽제 피해자이기도 한 아버지의 건강은 그새 더 악화됐고, 수감돼 있는 기간 동안 어머니가 충격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 씨는 외국에 나갔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한국전 이후 첫 고법 부장판사 구속' 김홍수 게이트…이면엔 무죄 판결도
박민식 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로서 수사에 참여했습니다. 현직 고위 법관은 물론, 검찰 선후배들까지 구속시키면서 박민식 검사에게는 '불도저 검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교부에 재직하다 사법고시까지 패스해 검찰에 들어온 '엘리트' 박민식 검사는 굵직한 수사에 이름을 올리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출근하던 날 영문도 모르고 체포당했습니다. 검사 얼굴은 잘 못 보고 수사관으로부터 연달아 조사를 받는데 없는 사실을 진술하라고 하니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김홍수와 대질 조사도 제가 감정이 격해지는 바람에 제대로 못 이뤄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사건 주임검사가 들어오더라고요. 젊고 똑똑해 보이는, 알고 보니 저와 동갑인 검사였습니다. '이제 똑똑한 검사님이 오셨으니 내 억울한 사정을 잘 들어주겠구나' 희망이 생기던 그때, 박민식 검사님이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여기가 어디라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 순간 모든 게 끝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수감돼 있는 동안 줄곧 억울함을 주장한 김 씨는 천신만고 노력 끝에 브로커 김홍수의 통화내역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홍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들이 재판 과정에서 속속 드러났습니다. 김홍수가 금품 제공 내역을 기록했다는 다이어리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사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장기간 작성되었다는 김홍수 다이어리가 줄곧 같은 필기구의 같은 필체로 작성된 점 ▲다이어리 기재 내용과 세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점을 근거로 "사후에 인위적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진 2심과 3심에서도 법원은 여러 혐의를 받던 법조브로커 김홍수가 자신의 죄책을 줄이기 위해 허위 진술과 증거를 제시했고, 이를 토대로 잘못된 기소가 이뤄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민식 의원은 SBS에 당시 김홍수 법조비리 사건에서 다수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으며, 무죄가 나온 사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담당 검사로서는 재판부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법원과 시각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증거의 형성에는 전혀 개입한 바가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아버지는 참전 유공자로 고엽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병원에 가실 때마다 그래도 나라에서 이렇게 치료받게 해 준다고 국가가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억울하게 국가로부터 재판에 넘겨졌다가 5년의 세월을 허비해버렸잖아요. 그 이후 10년 동안에도 박민식 검사는 국회의원이 되고 보훈 처장이 됐습니다. 지금 저는 국가가 고맙다는 아버지의 그 말을 떠올리면...참 만감이 교차합니다."
2004년 이라크 전에서 사망한 챈스 팰프스 일병의 시신이 유족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Taking Chance>는 '보훈'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위해 국가가 보여주는 진심 어린 행동 하나하나는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국가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구성원들이 느끼는 '국가의 의미'가 모여 국가 권력과 권위의 원천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훈 행정의 총책임자인 보훈부 장관직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의 의미와 권위를 형성하는 역할을 맡은 막중한 자리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권위는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수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자기 성찰'로부터도 유래합니다. 때문에 선진화된 많은 국가들이 국가권력의 오작동에 무작정 눈감지 않고 시정하고 사과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국가는 권력과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파들로부터 자기 권위를 세련되게 방어하고, 다수 구성원들로부터 정당성을 얻어 갑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는 비로소 '부'가 되었습니다. 갈수록 구성원들로부터 인정을 잃어가고 있는 '국가'의 의미와 권위를 세워가야 할 중책이 초대 보훈부 장관 어깨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오늘 열릴 청문회에서 쏟아질 질문들에 대해 박 후보자가 내놓을 답변들은 그가 이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낼 수 있을지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17년 전, 김 씨에게 일어났던 '그 일'에 대해 오늘의 박민식 장관 후보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보훈행정의 직접 당사자이기도 한 김 씨의 이 물음 또한 오늘 박 후보자에게 던져질 것입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어떤 자세로 어떤 내용의 답변을 내놓을지. 부분의 오류를 전체의 오류로 매도해서도 안 되겠지만, 부분의 오류를 인정하고 성찰하지 않는 이 또한 온전한 권위와 정당성을 얻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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