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일본은 미국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2023. 5.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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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G7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히로시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의 국회의원(중의원) 지역구다. 히로시마는 나가사키(長崎)와 함께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원자탄을 투하한 도시다. 나가사키보다 3일 전인 8월 6일 피폭 당했으니 히로시마는 인류 최초로 핵무기 피해를 당한 도시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원자탄을 개발하는 '맨하탄 계획'을 추진하며 전쟁 상황을 면밀히 관찰했다. 미국 군 수뇌부는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이 '1억 총옥쇄'를 외치며 미군 총구에 '반자이 공격'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본토 상륙작전을 펼치면 100만 이상의 미군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광기가 원자탄 사용의 원인이 된 것이다.

원자탄 개발 책임자 그로브스 소장이 조직한 '원폭 목표 선정 위원회(target committee)'에서는 도쿄(東京) 황거 주변에 원폭을 투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후에 정치인, 행정가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외됐다. 교토(京都)도 대상이었지만 일본의 엣 수도여서 고적지, 문화재가 많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당시 수준의 원폭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인구와 면적을 가졌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망자는 약 14만 명이고 이중 군인은 2만여 명이며, 희생당한 한국인은 최대 8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결국 민간인을 향해 치밀하게 계획한 대량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과 다른 점은 미국이 승전국이란 사실뿐이다.

전후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가 끝난 후 많은 미국 대통령들이 일본을 방문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문은 피했다. 종전 후 무려 71년 지난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차 일본을 들르면서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민간인들을 계획적으로 학살된 원폭 투하는 도덕적, 국제법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만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미국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 지도자들과 지식인들도 사죄를 요구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로마인 이야기', '르네상스의 여인들' 로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사죄를 요구하지 않고 말없이 손님을 맞는 것이 큰 소리로 사죄를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품위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미국 쪽에서 노암 촘스키 MIT 명예교수를 포함한 지식인 70여 명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원폭투하에 대한 사과를 하라는 서한을 전달했다. 2023년 G7정상 회의에서도 19일 정상들이 히로시마 원폭 자료관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도 미국은 원폭 투하와 관련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미리 밝혔다.

일본에는 '원폭 버섯구름' 모양의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우고 매주 미국의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원폭피해 시민단체는 없다. 매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청 근처에 희생자 분향소를 만들고 미 제국주의의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는 정치인도 없다. 일본에는 "이기면 관군, 지면 적군(勝てば官軍, 負ければ賊軍)"이나 "긴 물건에는 감겨라"라는 속담이 있다. 자기 힘에 겨울 정도로 긴 쪽에는 차라리 감겨버려야 편하다는 의미로 세력 있는 사람이나 나라(미국)에는 반항하지 말고 따라가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한국과 천지 차이다. 그래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명분론과 유교 도덕관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정신세계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많다.

이런 일본인의 독특한 특성을 보면 우리는 '독도', '종군 위안부', '징용공'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국의 국력이 압도적일 때까지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익은 '죽창가'나 '토착왜구' 타령은 진심으로 사죄를 받으려는 목적이라기보다 국내 정치에 유리한 프레임을 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알고서도 이를 계속하는 집단은 역으로 일본 극우세력을 키워주고 나아가 김일성이 주장한 '갓 끈 전술'에 놀아나 깨춤이나 추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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