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석열 정부 1년,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역대급

김은지 기자 2023. 5. 22.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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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대통령기록관은 193일 동안 압수수색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기록물이 정쟁화되면서 생긴 일이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좀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기록관은 역대 대통령에 관한 공적 기록을 수집해 후대에 전하는 국가기관이다.ⓒ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1년,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 기간은 역대 어느 정부 같은 기간보다 길었다. 2022년 5월10일부터 2023년 5월9일까지 대통령기록관은 193일 동안 압수수색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반년(182.5일)이 넘는 기간이다.

대통령기록관의 역대 압수수색 전체 현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사IN〉은 대통령기록관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입수해 살폈다. 대통령기록관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압수수색 사건별, 연도별, 월별, 일수(사건별로 최초 압수수색일부터 최종 압수수색일까지), 사유, 제출 문건, 수사기관 등의 내용이 담겼다(〈그림 1〉 〈그림 2〉 참조).

대통령기록관은 이름 그대로 역대 대통령의 기록을 관리하는 곳이다. 각종 사진·동영상, 회의록, 접견 인사, 일정, 편지 등 국가수반의 모든 것에 관한 공적 기록을 수집해 후대에 전하는 국가기관이다. 대통령기록관이 탄생하는 데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산파 구실을 했다. 2007년 4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이 제정됐다. “기록은 역사이다”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와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신념이 반영됐다.

그 덕분에 전임 대통령들과는 차원이 다른 양의 대통령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 △이승만 9만5541건 △윤보선 3657건 △박정희 8만1878건 △최규하 4만6187건 △전두환 10만3746건 △노태우 6만4670건 △김영삼 14만5108건 △김대중 95만2342건 △노무현 787만5389건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당대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를 두었다. 국가안보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 등이면 ‘지정기록물’로 분류해 최대 15년 뒤 공개하도록 했다(사생활 관련은 최대 30년 후 공개).

그러나 제도 설계자의 바람과 달리, 지정기록물은 이후 정쟁의 대상으로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새 정부 시작과 함께 대통령기록관은 늘 수사의 대상이 되어왔다.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지정기록물을 열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든 정권마다 있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거나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지정기록물 열람 및 자료 제출이 가능하다.

오전엔 대전지검, 오후엔 서울중앙지검

검찰 등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대통령기록관으로 향하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각 정부의 집권 1년 차에 집중됐다. △이명박 정부 1년 차 1일(나머지 임기 동안 없음) △박근혜 정부 1년 차 91일(나머지 임기 동안 없음) △문재인 정부 1년 차 8일(나머지 임기 동안 230일)이다.

이러한 숫자와 비교해봐도 윤석열 정부 1년 차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기간은 눈에 띈다. 지난 1년 동안 193일이다. 그 기간 검찰은 세 가지 사건으로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대전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태훈)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과 관련해 2022년 8월19일부터 2023년 2월1일까지 167일 동안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 대상에 올렸다. 사본 338건을 가져갔다.

2022년 8월19일은 이례적으로 하루에만 두 차례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오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수사로 대전지검이 다녀갔고, 오후에는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의혹’ 관련 수사로 서울중앙지검이 찾아왔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그날을 시작으로 두 차례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사건으로 검찰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을 대거 기소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은 현재 1심 재판을 받는 중이다. 정 전 실장의 변호인은 “정권교체 후 보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8차례에 걸쳐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은 사본 266건을 검찰에 제출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기소됐다. 현재 이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1심 재판에서 혐의를 다투고 있다. 윤건영 의원은 “틈만 나면 전 정부 탓을 하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에 올인하다 보니, 대통령기록관을 들쑤신다. 대통령기록관을 뒤진다고 현 정부의 지지율이 오른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2020년 한국기록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관련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정기록물 제도는 대통령기록의 생산을 활성화하고, 누락 없는 이관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정치적 쟁점마다 등장하는 대통령기록, 검찰의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등으로 지정기록물 제도는 신뢰가 하락하고,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지정기록물 제도만으로는 기록이 보호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게 되었다(〈대통령기록관리 제도 개선 현황과 향후 추진 방향〉, 조영삼).”

2007년 12월 업무를 개시한 대통령기록관은 출범 초기부터 신산한 역사를 겪었다. 2008년 9월10일 대통령기록관은 첫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e-지원)을 봉하마을로 ‘무단 유출’해 갔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과열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복사본을 돌려줬음에도 대통령기록관의 상위기관인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좌진 10명을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검사 구본진)가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건은 종결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통령기록관은 타깃이 되었다. 대선이 치러지기 두 달 전인 2012년 10월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사초 실종 논란’으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기록관은 91일에 걸친 압수수색을 당했다.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사정이 더 심화됐다. 보통 집권 1년 차에만 이뤄졌던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상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건은 모두 9건이다. △2017년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침몰 관련 △201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개입 관련 △2019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국고 손실 △2020년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 등으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해당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기록관리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 초반 적폐 청산 분위기야 그랬다 해도,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내부적으로는 ‘너무 심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당시 정색하고 문제 제기를 못한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원석 검찰총장 ⓒ연합뉴스

“보여주기식 기록만 생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별건 수사 가능성과 대통령기록 생산 부실에 대한 지점이다. 먼저 압수수색의 형식을 보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전자정보인 문서를 모두 열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키워드로 문서 제목을 검색해 열어본 다음, 이를 바탕으로 사본을 가져간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사본은 “목적에 한정해서 대통령기록물이 활용되어야 하고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지체없이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대통령기록물을 ‘별건 활용’하는지를 확인할 뾰족한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기록관리 전문가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대통령기록물 생산 자체가 부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상황을 현 정부 관계자들도 다 지켜보고 있지 않나.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지 털릴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기록용을 위한 기록만 남길 위험성이 크다.이관 분량도 신경 써야 하기에 기록 자체를 남기긴 할 것이다. 대신 나중에 오픈되어도 문제가 안 될 ‘보여주기식’ 기록만 보낼 수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거악 척결을 위해 정당하게 발부받은 영장 집행’이라고 주장한다. 절차를 거쳐 행사하는 검찰의 권한이라는 의미다. 실제 법이 보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압수수색 영장 발부 자체를 좀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을 지냈던 임상경 초대 대통령기록관장은 최근 법원의 움직임을 언급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월 형사소송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당초 6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검찰의 반발로 대법원은 의견수렴 절차를 더 거치겠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처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실질심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원행정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0%대를 오갔다(〈그림 3〉 참조). 그만큼 압수수색 영장이 쉽게 나온다는 뜻이다.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당초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의 취지대로 영장 발부 요건 강화와 영장 발부 시 최소한의 범위로 대상을 명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원행정처의 규칙 개정을,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도 적용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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