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보리밭
봄꽃은 찰나이다. 순식간에 피었다 지면 허망하다. 그러나 봄날의 보리밭은 늘 넘치는 즐거움이다. 파란 보리싹이 자라서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의 시절을 지나 노릇하게 익어갈 때까지 버릴 풍경이 없다. 한 시절엔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작물이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의 ‘보리밭’은 오랜 사랑을 받아온 가곡이다. 따스한 서정이 돋보이는 이 노래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만들어졌다. 피란지인 부산 자갈치 시장의 한 대폿집에서 황해도 은율이 고향인 선후배가 만났다.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박화목은 종군기자, 작곡가 윤용하는 해군 음악대원 신분이었다.
윤용하가 전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박 시인이 ‘옛 생각’이라는 제목의 시를 건넸다. 며칠 뒤에 윤용하가 ‘보리밭’으로 제목을 바꿔 달아 노래를 완성했다. 두 사람이 함께 떠올린 건 일렁이는 고향의 보리밭 풍경이었다. 박화목은 이 노래 외에도 ‘과수원길’과 ‘망향’ 등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윤용하는 동요 ‘나뭇잎배’와 광복절 노래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보리밭’이 유명해진 건 1971년 KBS 경음악단장인 김강섭이 편곡하여 문정선이 부르면서다. 드라마 주제곡 ‘파초의 꿈’으로 데뷔한 문정선은 ‘보리밭’을 부르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 소프라노 조수미와 테너 엄정행 등 스타 성악가들이 부르면서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이제 곧 보리가 익어갈 것이다. 짚불에 그을린 뒤 비벼서 먹으면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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