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먼저 인간이 돼라”

2023. 5. 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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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개통시'라고 적힌 패널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첫 번째(1년)와 두 번째(6개월)에 이은 연기였는데, 아예 날짜를 없애고 '개통시'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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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개통시’라고 적힌 패널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바람 때문에 떨어졌는지, 주민이 떼어낸 것인지 사연은 모른다. ‘개통할 때까지’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서울에 인접한 도시의 총연장 2375m, 정거장 1개소와 환기구 3개소를 만드는 지하철 연장 공사(3공구)의 기간(“2016. 06. 08.~2021. 12. 08.”)이 세 번째 연기됨을 알리는 정보였다. 첫 번째(1년)와 두 번째(6개월)에 이은 연기였는데, 아예 날짜를 없애고 ‘개통시’라고 한 것이다. 연기에 대해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게시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시 당국, 국회의원 등 모두 묵언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공사장 네거리와 거리에 지하철 공사를 포함하는 도시 편의사업 예산을 유치했다는 플래카드는 여러 차례 얼굴을 내밀었다. 시민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오만과 무례함이었다.

“세상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문둥병을 앓던 슬픈 시인(한하운)의 고통처럼 ‘무례함이 주는 고통도 끝이 없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 박원순 전 시장을 옹호하는 다큐멘터리물을 제작·개봉한다는 것을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밝히고 후원을 언급한 지 며칠 만에 4000여명으로부터 2억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9일 전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민주당 집권 시절 6개월간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1월 “피해자에 대한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박 전 시장 부인이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낸 행정소송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했다.

거듭 확인된 사실을 부인하는 언행에 대해 ‘국민의 힘’은 ‘극악무도한 2차 가해’라 했다. ‘임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피해 호소인’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민주당은 일언반구도 없다. 다큐멘터리의 감독(김대현)은 가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면서 ‘질문은 2차 가해가 아니다’라는 해괴한 말을 한다. 피해자의 변호사(김재련)는 피해 사실에 대한 “객관적 자료들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객관적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가 지속된다며 징벌에 가까운 배상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한 의원(유호정)은 “추모도 좋고 예술도 좋은데 먼저 인간이 돼라”고 했다.

‘죽음’과 함께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박 전 시장의 최소한의 고백마저 부인하는 ‘잔인한 2차 가해’가 자행되고 있다. 무자비한 ‘팬덤 옹호’가 대한민국의 통합과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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