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대응 신중” 3일 만에 “강경”…기조 뒤집은 경찰청장

이유진 기자 2023. 5. 2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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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상경집회 전날
지휘부, 언행 유의 등 당부
이튿날 윤희근 ‘대국민담화’
돌연 ‘불법집회’로 규정하며
집시법 반한 초법적 발언도
경찰 내부서도 ‘당혹’ 분위기

건설노동자 양회동씨의 분신 사망 이후 ‘건폭 수사’ 홍보 자제와 집회·시위 신중 대응을 주문하던 경찰 지휘부가 최근 건설노조의 ‘1박2일 서울 도심 상경집회’를 기점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강경 대응을 천명한 윤희근 경찰청장(사진)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에 경찰 내부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 청장이 초법적 발언으로 논란을 자처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1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경찰청은 건설노조의 집회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열린 화상회의에서 집회·시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윤 청장이 주재한 회의에는 조지호 경찰청 차장,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을 비롯해 경찰 지휘부와 각 시·도청 국·과장 등이 참여했다. 지휘부는 이날 언행 유의와 적법 절차 준수 등 ‘안정적인 상황관리’를 주로 당부했다. 양씨 분신 이후 노동계를 중심으로 분출한 ‘건폭 수사’ 비판, 노동자 사망으로 집회가 과격화될 가능성 등을 감안한 조치로 해석됐다.

구체적으로는 의도적인 도발 시 감정적 대응, 법적 절차 위반·결략, 인권침해 등 지휘관·부대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달라는 당부사항이 하달됐다. 해산 절차·현행범 체포 시 미란다 원칙 고지 등 적법 절차 준수는 물론 변수 발생 방지, 과잉대응 시비 방지도 당부사항에 포함됐다. 경찰청장의 “불법행위 엄정 대응” 메시지도 없었다. 일선 경찰은 건설노조 집회에 대응하면서 지휘부의 사전 당부를 충실히 이행했다. 노조 측이 집회 종료 이후 ‘야간 문화제’를 이유로 해산하지 않자 16일과 17일 남대문서장과 중부서장이 각각 3차례 불법집회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강제해산은 하지 않기로 했다. 노숙집회 역시 일부 노조원들의 음주, 야간 고성 등이 문제로 지적되긴 했지만, 기물 파손이나 인명 피해 등 사건·사고가 없었다는 점에서 강제해산은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틀간 열린 집회에서 경찰과 노조원 사이의 과격한 충돌이나 폭력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기조는 집회 이튿날인 지난 18일 윤 청장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180도 뒤집혔다. 경찰청장이 대국민담화를 한 것은 지난해 11월1일 이태원 참사 대국민사과 이후 처음이다.

윤 청장은 담화에서 건설노조의 1박2일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난 2월 민주노총 결의대회와 지난 1일 열린 노동자 대회의 불법행위까지 병합해 수사하겠다고 했다. “혐오감” “불응 시 검거” 등 자극적 표현도 동원됐다. ‘신고제’가 원칙인 현행 집시법에 반하는 초법적 조치,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 검열에 해당하는 위헌적 조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일 아침 ‘쓰레기 100t’ ‘술판’으로 뒤덮인 보수언론 보도가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경찰청장의 돌연한 태세 전환에 경찰 내부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건설노조 집회 이후 언론에서 ‘공권력이 무너졌다’는 프레임으로 기사들이 나오지 않았냐”며 “(노조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지 않았겠나. 다만 입장이 세질수록 논리가 정교해야 하는데,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엄포를 놓은 것 같아 모양이 좀 이상해졌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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