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출 의장님, ‘윤석열’ 말고 ‘윤’ ‘尹’도 검색해보세요

이승준 2023. 5. 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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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지난 9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원내대책회의에서 포털 검색 결과를 인쇄한 종이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 | 오픈데스크팀장

인지도로 먹고사는 이들에겐 한 가지 버릇이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다. 주로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그렇다. 국회의원들도 연예인 못지않은 ‘검색왕’이다. ‘본인 부고만 아니면 나쁜 뉴스든 좋은 뉴스든 언론에 노출될수록 좋다’는 건 여의도의 불문율이다.

‘자기애가 넘친다’고 볼 수 있으나 순기능이 있다. 특히 국회의원은 자신의 말과 의정 활동을 대중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소속 당에 대한 민심은 어떤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포털로 디지털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다수다.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의 이름 검색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민심을 살피는 도구 중 하나로 포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온라인 여론의 추이를 좇는 부서 팀장으로 날마다 검색창과 댓글창, 많이 읽는 기사 목록을 살피다 보면, 사람들이 요새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화가 나는지, 또 뭘 궁금해하는지 흐릿하나마 파악하게 된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난 올해 봄에는 ‘꽃축제’ ‘여행’이 관심사였다. 부처님 오신 날 대체공휴일 적용이 확정되면 자신의 회사도 쉴 수 있는지, 일하면 휴일수당은 받을 수 있는지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는 다른 나라의 대책도 관심거리다. 고물가에 ‘삼겹살 2만원 시대’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한숨,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불안해하는 마음들도 검색창 아래로 툭툭 튀어나온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제기한 “속이고리즘” 주장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내일이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이다”라며 네이버 포털에서 윤석열 키워드를 치면,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비판적 기사만 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 ‘알고리즘’이 아니고 ‘속이고리즘’”이라며 “네이버 뉴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윤석열을 검색하는데, 제3자가 비판하는 기사가 관련도 순위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는 조작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후 국민의힘은 포털의 기사 배열에 대한 심의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포털 규제 관련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발언을 보고 두번 웃었다. 우선 <한겨레> 기사가 먼저 보인다는 사실에 반색했다. 10여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정치에 발을 들인 박 의장은 모를 것이다. 포털에 언론이 종속되면서, 수많은 경쟁을 뚫고 검색 상위에 기사가 뜬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헛웃음이 나왔다. ‘윤석열’ 대신, ‘윤’, ‘尹’을 검색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기사 제목에 주로 ‘윤석열’을 쓰지만, 대부분 언론은 한자인 ‘尹’을 쓴다. ‘尹’으로 검색하니 박 의장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포털 뉴스서비스의 사회적 책무 강화와 투명성 확보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지만 왜 그 지렛대가 ‘윤석열’이라는 열쇳말일까. 이전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도 늘 ‘정치적 편향성’을 포털 규제 동력으로 삼았다.

윤 대통령 취임 1년이라면 집권 여당이 검색해야 할 것은 봄축제 안전, 쉴 권리, 저출생 대책, 고물가, 후쿠시마 오염수 등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1년을 성찰하고, 개선해야 할 바쁜 시기에 ‘대통령을 누가 욕하나’만 찾는 데 소중한 시간을 꼭 허비해야 할까.

포털을 바로잡겠다면, 포털과 일부 언론사들의 묵인 아래 조회수와 수익 창출에 1순위를 둔 콘텐츠가 범람하는 현실에 주목했으면 한다. 선정적이고, 편견을 강화하고, 혐오를 재생산하는 등의 ‘나쁜 콘텐츠’를 언론사들이 더 많이 생산하고, 여기에 ‘좋은 콘텐츠’가 묻히는 현상이 계속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알아야 할 다양한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문제다.

박 의장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다시 검색을 해봤으면 한다. ‘윤석열’만 하지 말고 더 다양하고 폭넓게.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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