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령, 11년 만에 소설집 출간···사람과 삶에 대한 ‘구름해석전문가’ 눈길[화제의 책]

엄민용 기자 2023. 5. 21. 10: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름해석전문가 표지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작가 부희령이 11년 만에 소설집 ‘구름해석전문가’(교유서가)로 독자들을 만난다. 2012년에 발표한 ‘꽃’ 이후 두 번째인 이번 작품집에서는 ‘이별(떠남)’을 통한 다른 빛깔의 자유를 전한다.

부희령의 자유가 우리가 보아왔던 빛깔과 다른 이유는 “지금 여기와는 많이 다른 세계를 목적지로 설정하고자 한다”(작가의 말)는 지향 때문이다. 뒤얽힌 관계 뒤에 이별을 되풀이하는 운명의 고리를 끊는 것은 ‘이별’ 뒤에 남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자유’라는 자각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더 깊이 추락하고 더 높이 상승하기를 권한다. 자유를 위한 추락이기에 마주하는 절망은 고통스럽지 않고 희망적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집은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절망과 고통이 반드시 무겁지만은 않았다는 발견에 이르는 소설들”(소설가 송기원)이며, “구름을 벗어난 산 위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맑은 시선”(소설가 송기원)이기도 하다.

특히 “부조리한 것, 부당한 것들, 얽히고설킨 사람 사이의 갈등과 넌덜머리나게 하는 모순들을 살아 있는 질감으로”(소설가 이경자) 냉정하게 풀어내는 부희령의 문장은 차가운 얼음에 부딪는 뜨거운 햇살의 쨍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소설 속에서 부희령의 인물들은 반복하는 관계의 순환 속에 존재한다. 그중 일부는 이별하지 못한 채 운명에 갇혀 있고, 일부는 이별로 관계를 벗어난다. 우리가 현실에서 그러하듯이 말이다.

‘콘도르는 날아가고’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자 현관문에 방범문을 덧달고 담장 위에 쇠창살을 빙 둘러 박는다.

또 ‘만주’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조선 농민들이 땅을 빼앗기고 만주로 강제이주되던 때다. 주인공 임돈은 세상과의 아득한 거리를 모르핀 삼아 자기만의 세계로 달아나려 하지만, 죽음에 이른 순간 자신이 세상과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귀가’에서는 과거의 온갖 형상과 얽혀 이 세계와 이별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나’가 있다. “캄캄한 골목 어둠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면서, 신발이 벗겨질 것 같아 초조해하며, 온 힘을 다해 달려도 골목은 영영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진다. 귀가하지 못한 나는 이따금 옛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155쪽)는···.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무거움’을 덜어내고 이 세계에 붙박여 거듭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교양과 품위를 지키며 사는 네 명의 중년은 주말이면 모여 자신들의 죄악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선한 삶이 아니라 ‘무거움’을 덜어내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구름해석전문가’에서는 쥬인공 이경이 선우가 준 노트북을 들고 소설을 쓰기 위해 포카라로 간다. 하지만 노트북의 암호를 몰라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게다가 노트북을 준 선우는 다시 돌려 달라고 계속 카톡을 보낸다.

이러한 작가의 글에 소설가 송기원은 “자신의 트라우마는 물론 타인의 고통과 절망에도 비로소 가닿기 시작한 시선이 보인다”면서 “어떤 성자는 ‘고통과 절망이야말로 수행의 큰스님이다’고 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부희령의 소설은 정통을 지키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과 빼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이번 책의 소설들을 교정지 상태로 읽었다는 소설가 이경자는 “부희령 작가의 고유하고 독특한 매력과 재능에 빨려들어 거의 손에서 놓지 못했다”며 “사람의 마음을 더듬는 묘사는 더욱 정확하고 신랄하고 거침이 없다”고 추천의 글은 남겼다.

한편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어떤 갠 날’로 등단한 작가는 그동안 80여 편의 번역서를 내면서 꾸준히 자신 안의 멍울을 끌어올려 풀어내 왔다. 청소년 소설 ‘고양이 소녀’, 산문집 ‘무정에세이’ 등을 통해서도 틈틈이 독자를 만났다. 아울러 여러 일간지의 칼럼난에서 날카로운 시선과 맛깔나는 글발을 보여주고 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