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투기여 잘있거라”…외면받던 라팔, 시장서 가치 급등한다 [박수찬의 軍]

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가 공동개발한 타이푼, 스웨덴 그리펜 등을 제치고 F-35 스텔스 전투기가 진출하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수주 성과를 올리는 모양새다.
◆성능 검증되자 수출길 열린 라팔
2000년 프랑스군 첫 실전배치 직후 프랑스 정부는 라팔의 수출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10여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
2002년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서는 F-15K, 2006년 싱가포르 사업에선 F-15SG에 패했다. 2007년 모로코에선 F-16에 패배, 프랑스 정부와 정치권에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냉전 이후 예산 감소 등으로 개발이 지연, 규모의 경제를 구성할 수준의 주문량을 맞추지 못하면서 가격 인하가 어려워졌고, 이에 잠재 고객들은 라팔 대신 미국산 기종을 선택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국면은 2010년대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체계개발이 완료된 라팔은 아프간,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실전을 경험하며 성능을 입증했다. 중동에서의 실전경험은 라팔 수출에 있어 ‘티핑 포인트’(급격한 변화 시점)가 됐다는 평가다.
작은 크기에 높은 폭장량과 기동성을 갖춘 라팔은 전자전 장비도 충실하게 장착했다. 성능개량에 따른 장비 교체 및 추가 소요에 부응할 수 있는 기체 구조도 갖췄다.
덕분에 체계개발 완료 직후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을 장착하는 성능개량이 여러 차례 진행, 지상·해상·공중 및 전략적 타격력이 크게 강화됐다. 이를 통해 4.5세대 전투기 성능과 기능을 확보했다.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성능개량은 잠재 고객들에게 기체 도입 직후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될 위험을 의식하지 않도록 하면서 신뢰를 높여준다.
일부 유도폭탄을 제외하면 미국 기술과 무장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라팔이 주목받는 요소였다. 라팔은 100% 프랑스 기술로 제작됐다. 프랑스 기업인 닷소(60%)가 체계통합을 하고, 전자장비를 담당하는 탈레스(22%)와 엔진을 만드는 사프란(18%)이 참여한다.
미국의 제재 위험을 회피하면서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미국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게는 중요한 부분이다.
전투기 도입 예산이 부족한 국가에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상당한 이점이다. 실제로 2021년 이집트가 라팔 30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집트는 구매대금 39억5000만 유로 (5조3400억 원)의 85%에 달하는 융자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F-15EX는 미 공군 주문량이 기존 계획보다 축소되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F/A-18는 F-35C로 교체될 계획이다.
F-16V는 전자장비 개량 등으로 가격이 올랐고, 생산능력보다 주문량이 훨씬 많다. F-16 추가 구매를 고려했던 폴란드가 FA-50 도입으로 선회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F-35는 미국의 정치적 고려 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라팔이 주목을 받을 조건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라팔은 인도, 이집트, 카타르, 그리스, 크로아티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와 280여대 수출 계약을 맺었다. 콜롬비아 등에서도 라팔 도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라팔의 해외 시장 확대 과정에서는 한계도 있다. 예전에 프랑스산 군용기를 구매한 국가 위주로 수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와 UAE, 이집트, 그리스, 카타르는 닷소가 개발했던 미라지 전투기를 운용했다. 전투기의 작전을 돕는 정비 및 지상 지원체계와 항공무장이 프랑스 기종에 맞춰져 있던 국가들로, 기존 고객을 지키는 방식으로 수출을 했다.
새로운 고객인 크로아티아와 인도네시아는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수주에 성공했다.
크로아티아는 프랑스 공군용 기체를 최신형으로 개량하고, ‘9000시간 품질 보증’이라는 파격적 카드로 12대를 수주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동남아 최초의 프랑스 전투기 비운용국 계약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정부가 판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프랑스는 2040년대 이후 등장할 6세대 전투기인 미래전투항공체계(FCAS)를 독일, 스페인과 개발하고 있다. 영국이 이탈리아, 일본과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 2040년대부터는 양 기종이 6세대 전투기 시장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는 앞으로도 라팔 판매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라지가 라팔로 대체된 것처럼, 라팔 도입국가도 미래에 FCAS로 라팔을 교체할 수 있다. 이는 프랑스 전투기 시장이 수십년에 걸쳐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가 얻는 경제·정치적 이익은 막대하다.

라팔의 판매 확대는 KF-21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KF-21은 2026년까지 비행성능과 공대공 능력을 갖추는 블록1 사업이 진행된다. 2026~2028년 공대지·공대함 등 추가 무장을 결합하는 블록2 사업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2032년까지 전력화가 실시된다.
전천후 공격 능력을 지닌 KF-21의 등장 시점이 2028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개발 지연 가능성과 양산 순서 등을 감안하면 KF-21 블록2의 수출은 2030년대에 이뤄질 전망이다.
이를 두고 KF-21의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4년 개발에 착수한 라팔은 냉전 종식에 따른 예산 삭감 여파로 주문량이 감소하고 개발 일정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를 겪었다.
한국이 2002년 차세대 전투기(F-X) 사업 당시 라팔 대신 F-15K를 선정한 것도 공중전과 공대지·공대함 능력을 모두 갖춘 F-15K와 달리 라팔은 목표했던 성능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KF-21 잠재 수출국은 F-35를 구매하지 못하는 국가다. 이들은 라팔 수출 대상과 겹친다.
라팔이 검증된 성능과 융자, 최근 수주 실적을 토대로 적극적인 판촉에 나선다면, 블록1 수준의 KF-21은 2000년대 라팔이 해외 시장에서 직면했던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2002년 F-X 사업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라팔 대신 F-15K를 선택했던 일이 KF-21을 대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공군이 운용중인 정밀유도무기를 KF-21 블록1에 추가로 장착하는 것을 포함, 탑재 무장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 블록1과 블록2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FA-50과 T-50의 수출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라팔 구매국 다수가 프랑스산 미라지 전투기를 이미 운용한 경험이 있는 국가다.
T-50 계열 항공기는 KF-21처럼 한국의 기술과 군용기 운영 노하우가 스며들어 있다. T-50 계열을 운용한 국가는 지상지원 및 교육 등의 체계가 한국식으로 구축되어 있어 KF-21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F-35 미도입국을 수출 대상으로 하는 KF-21에게 라팔은 경쟁자이자 참고사례가 되는 존재다. 따라서 라팔의 수주 활동을 더욱 주시하고 분석해서 KF-21의 수출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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