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심어 100억 원 보상?’…시민 세금 녹는다 [주말엔]

박진영 2023. 5.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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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짓던 곳에 나무를 심으면 100억 원이 생긴다. 그런데 그 100억 원이 시민 세금으로 지원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실제로 곧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 돈 냄새 맡고 몰려든 사람들

대구 소재 경북 농업기술원 전경.


대구 북구에 아주 오래된 건물 한 곳이 있다.

경상북도 산하 공공기관인 경북 농업기술원이다.

지난 2014년 경북으로 옮기기로 했고, 경북도는 상주시와 의성군·예천군 3개 후보지 중 상주시를 선택했다.

그리고 2017년 6월 29일 이전 발표를 했다.

2017년 6월 29일 KBS대구 9시 뉴스.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이전지가 상주시 사벌국면 삼덕리 일원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KBS 역시 이 소식을 9시 뉴스를 통해 전했다. 상주시로서는 경사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갑자기 이전 예정 지역에 수십만 그루의 나무가 심기기 시작한 것이다.

벼 농사 짓던 곳에 나무가 가득 심기기 시작했다.


소나무·단풍나무·향나무...대부분 조경수였다.

알고 보니 외지 조경업자와 마을 주민 30여 명이 나무 보상금을 노리고 벌인 일이었다.

토지보상법상 국가가 공익사업을 위해 토지를 취득하면, 토지 외에 나무와 같은 땅 위의 지장물도 함께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토지보상법 시행규칙 제37조. 나무 보상에 관한 세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조경업자와 땅 주인들은 계약서까지 썼다.

그런데 그 내용이 황당하다.


①조경업자가 나무를 들고 와 심고 관리해준다.

②나무 보상비를 받게 되면 조경업자가 7을, 땅 주인이 3을 갖는다.

③만약 보상비 협의가 늦어지면, 계약서 쓴 3년 뒤부터는 7.5대 2.5로 비율을 바꾼다.

동네 주민 A 씨도 이러한 제안을 받았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나무를 심으라 합디다. 토지도 보상받고, 나무 심으면 나무 이전비까지 보상받게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거 다 세금 아닙니까."

A 씨는 제안을 거절했다.

A 씨와 달리 제안을 받아들인 주민들 땅에는 나무 수십만 그루가 심겼다.

이전지 전체 면적 96만 제곱미터 중에 약 12만 ㎡에 이르렀다.

벼농사 짓던 땅 12만 ㎡에 나무가 심겼다. 그것도 2년 사이에...


그렇다면 이들이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나무 보상금은 얼마일까.

100억 원. 나무 보상금이 무려 1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부 국민 세금이다. 계약서대로라면 조경업자는 75억 원을 가져간다.

차라리 국가가 나무를 사들이는 금액이면 그나마 나은데, 전부 옮겨심는 비용이다.

보상금을 노리고 조경수가 가득 들어찬 필지들.


조경업자와 나무 심은 주민에게 전화했다.

"아, 저는 통화하기 싫어요. 방송국이랑 제가 왜 통화해요. 더 통화하기 싫어요."

둘 다 취재를 완강히 거부했다.

다른 방법으로 투기 정황을 확인해야 했다.

■ 차고 넘치는 투기 정황들

우선 이전 발표가 나기 전 현장을 찍은 드론 영상을 확보했다.

그리고 KBS가 현재 모습을 찍어 보고 비교했다.

논밖에 없던 평평하던 땅에, 푸르른 나무가 대거 심겼다.


2017년에는 평평하게 논밖에 없던 땅이었는데, 지금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긴 땅이 쉽게 발견됐다.

항공 사진으로 비교해보면 더욱 정확하다.


이건 2017년 사진이다. 황토색 땅은 모두 벼농사 짓던 논이다.


이전 발표 이후 2019년. 땅 곳곳에 줄을 맞춰 나무를 심은 것이 확인된다.

이런 곳이 전체 500필지 중에 40여 필지에 달한다.

가까이 다가가 봤다.

어린 나무를 심다 보니 나무들이 전부 작고 가늘다.


소나무인데 둘레가 너무 얇아서 휴대폰 너비와 같은 정도다.

그리고 나무 간격이 대부분 빽빽하다.

나무 사이의 간격이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루당 책정되는 이주 보상비를 많이 받으려면 나무를 무조건 많이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 간격이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나무 생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이 지나던 농로에까지 나무를 심었다.

사진 속 1시 방향, 아스팔트 뒤로는 원래 사람이 지나던 농로였다. 투기꾼들은 나무 보상비를 많이 받기 위해 농로에까지 나무를 심었다.


서류상으로도 투기 정황은 쉽게 발견된다.

계약서를 쓴 시점 이듬해, 농민 30명이 동시에 농업경영체 상 작목을 벼에서 조경수로 변경한 것이다.


'영농 목적'으로 나무를 심은 것이라고 속이기 위한 작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30명이 동시에? '눈 가리고 아웅'이다.

주민들은 농업기술원 이전으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보상금을 노렸다.

1. 토지 보상금
2. 영농 보상금 (당분간 농사를 못 짓게 된 것에 대한 보상)
3. 나무 보상금

과연 이들이 원하는 돈을 세금으로 보상해야 할까.

사진 속 12시 방향에 투기 목적으로 무궁화 나무가 가득 심겨진 모습.


■ 나무 보상금 주라고? 황당한 결정 나와

경상북도는 모든 투기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당연히 보상 대상에서 나무를 제외했다.

역시나 나무 심은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했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경상북도와 주민들은 국토교통부 산하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이하 중토위)에 수용 행정심판을 요청했다.

국가가 심판해달라는 것이다.

국토개발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그런데...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중토위가 주민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우선 시간대별 상황부터 살펴보자.

① 2017년 6월 29일. 기술원 이전 발표
② 2018년 11월 7일. 사업 계획 공람
③ 2022년 5월 29일. 사업 인가

2017년에 사업이 발표되고, 2018년에 사업 계획 공람이 이뤄졌다. 그리고 2022년에 사업 인가가 났다.

일반 시민 상식에서는 당연히 2017년을 보상 기준일로 삼아야겠지만, 중토위는 2022년을 보상 기준일로 삼은 것이다.

토지보상법이 근거였다. 현행법에는 사업인가 이후부터 개인의 개발행위를 제한한다고 나와 있다.


사업인가 전에는 나무를 심는 등의 개발 행위가 인정되기 때문에, 나무 보상금을 지급해주라는 것이다.

사실상 2017년 이전 발표 이후부터 사업인가일까지 5년간의 투기 행위를 모두 인정해 준 셈이다.


나무 보상 관련 법이 허술해서 생긴 일이었다.

감정평가사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조정흔/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감정평가사)
"지장물에 대한 보상기준일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그 이전에 일어난 투기 행위에 대해서는 잡아낼 방법이 없는 거예요."

반면 지장물과 달리 토지는 보상기준일이 명확하다. 사업계획 공람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결과로 사실상 조경업자의 투기 행위가 합법화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몰래 쉬쉬하며 나무를 심고 보상비를 노렸다면, 이제는 정부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방법을 인정해줬으니 대놓고 나무를 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경북 농업기술원은 행정 심판에 이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결론이 바뀌지 않는다면? 시민 세금으로 투기꾼들 배를 불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비일비재했다.

2008년 경북도청이 대구에서 안동으로 옮긴다는 발표 직후에도 이전지역 4만여 ㎡에 나무가 심겼다.

LH 직원들이 공공택지 개발지역에 희귀묘목인 용버들 나무를 심었다가 적발됐다.


2년 전에는 LH 직원들이 공공택지 개발지역에 용버들 나무를 심었다가 적발됐다.

공익 사업에 나무 보상비를 노린 투기가 왜 이렇게 빈번할까.

그동안 투기꾼들이 요구하는 대로 보상금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공익사업 시행자들도 투기 현장을 다 목격했지만, 토지보상법상 보상을 안 해줄 수 없는 데다 주민 민원과 공사 방해를 우려해 요구를 들어주는 실정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익 사업에서 나무 투기꾼들이 돈을 벌었을까?

특히 조경업자들이 돈을 버는 수법은 '괘씸'하기까지 하다.

아래 그림은 조경업자들이 돈 버는 과정을 쉽게 설명해준다.


묘목을 A 공익사업에 심었다가 보상비를 받은 뒤, 다른 공익 사업에 옮겨 심는다. 그 뒤 다 자란 나무를 높은 가격에 되판다.

조경업자들은 투기에 가담한 땅 주인들에게 나무 자랄 땅까지 제공받으면서 한 묘목으로 이중, 삼중으로 돈을 벌고 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세금으로 투기꾼 배 불릴 순 없으니까.

■ 법 바꾸지 않으면 세금 낭비 반복

우선 앞서 말했듯이 지장물에 대한 보상 기준일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언론을 통해 공익 사업 계획을 발표하거나, 최소한 사업 계획 공람일 정도까지는 보상기준일을 앞당겨야 한다.

KBS는 이 점을 국회에 알렸고, 곧바로 법을 고치겠다는 의원을 만났다.


심상정/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이걸 방치하면 전국의 공익 사업에 나무 투기가 횡행할 것 같습니다. 행위 제한의 시점을 개발 계획이 발표되는 시점과 일치시킴으로써 이런 보상을 노린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상정 위원은 세금으로 보상비 지급되는 일을 막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투기 행위를 단속하고, 보상 대상에서 제외할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 정부가 지난 2021년 LH 사태 당시, <부동산 투기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투기 혐의가 확인되면 보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지만 이제까지 제대로 된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법에서 확실하게 투기의 기준이 무엇인지와 또 공익사업 시행자가 투기 혐의를 확인할 근거가 무엇인지를 규정해야 한다.

조정흔/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감정평가사)
"보상받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 그건 정말 투기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명백하게 다른 증거로 확인된다고 그러면 그건 배제하는 게 맞는 거죠."

법을 바꾸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당장 중토위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가 중요하다.

원만하게 토지 보상 합의를 한 마을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마을 주민
"투기꾼들한테 이 보상금을 준다면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정말 잠 못 잡니다. 개개인의 세금으로 나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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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jy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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