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절친한 친구를 죽이고 싶습니다”...동지였지만 적이 된 사내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5. 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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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22] 그들은 개혁의 동반자였습니다. 새 시대를 향한 포부를 공유했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자며 의기투합했었지요. 믿음은 끈끈했습니다. 신뢰로 맺어진 인연은 끊을 수 없는 혈연만큼이나 견고합니다.

‘빛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순풍을 맞은 돛단배만큼이나 개혁은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새 변해 있었습니다. 개혁의 방향을 두고 의견 충돌이 잦았지요. 서로를 향해 “권력욕에 사로잡힌 부패한 세력”이라고 비난합니다. 우정의 맹세는 저주의 언어로 변해 버렸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이젠 경멸로 가득합니다.

1964년 영화 베켓의 한 장면. 헨리 2세(왼쪽)와 토마스 베켓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 출처=IMDB>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세 영국에서도 동반자에서 적으로 돌아선 이들이 있었지요. 바로 헨리 2세와 토마스 베켓입니다. 약 900년의 시차, 동과 서라 공간적 간극에도 그들은 유사한 길을 걸었습니다. 만남, 개혁에 대한 뜻, 그리고 이별까지도요.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개혁의 동반자... 빛났던 우정
1154년 즉위한 잉글랜드 왕 헨리 2세는 개혁가였습니다. 물론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였습니다. 또 다른 권력의 축이었던 교회와 적극적으로 싸웠지요. 당시 교회는 영지를 가질 수 있었고 신도들에게서 세금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왕의 권리는 제한되었지요. 교회의 영지가 커질수록 왕의 영토는 작아지는 것이었으니까요.
헨리 2세가 성당을 들고 있는 걸 묘사한 모습.
교회 영지에서 모이는 돈은 모두 로마로 향했습니다. 유럽의 왕이 보기엔 이는 ‘국부유출’ 처럼 보였지요. 중세 유럽에서 정치와 종교는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카노사의 굴욕’ 역시 정치와 종교 간의 불화로 인한 파열음이었습니다.
교회 최고 권력에 자신의 사람을 심다
“너 나와 함께 교회와 싸워보겠나?”

헨리 2세는 영리한 지도자였습니다. 묘수를 고안해 냈지요.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가톨릭의 자리인 캔터베리 대주교, 이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임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재판관 출신 토마스 베켓이 그 주인공이었지요.

“친구야, 이제 개혁의 시간이다.” 영화 ‘베켓’에서 헨리 2세(왼쪽)가 재판관인 토마스 베켓과 함께 있는 모습. <사진 출처=IMDB>
토마스 베켓 역시 그의 선조가 정복왕 윌리엄과 함께 잉글랜드로 온 노르만족이었습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웃음을 나누는 동반자였습니다. 국왕 헨리 2세가 그를 특별히 총애한 배경이었지요. ‘종교개혁’의 적임자로 헨리 2세가 그를 낙점한 이유입니다.

토마스 베켓의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을 강행합니다. 마치 문재인 대통령이 재직 당시 검찰개혁의 선봉장으로 박근혜 정부 당시 좌천 된 윤석열 검사 카드를 꺼내 든 것과 같은 상황이었지요.

지난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 임명장을 받는 모습.
내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어쩐지 수상하다
헨리 2세는 토마스 베켓이 자기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가톨릭 캔터베리 대주교로서 왕권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 확신했지요. 그러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집니다. 토마스 베켓이 대주교가 되자마자 철저히 교회의 이익에 봉사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헨리 2세가 1164년 통과시킨 클라레든 칙령이 분수령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성직자는 세속 법정 대신에 교회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헨리 2세는 이를 고깝게 여겼지요. 법령을 통해 이를 폐지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 개혁의 핵심이었습니다.

캔터베리 대성당. 570년 지어진 이 성당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다. 종교개혁의 핵심이기도 했다. 1170년 이후 전 유럽의 성지로 거듭났다. <저작권자= Antony McCallum>
베켓은 처음에는 헨리 2세의 말을 따르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최종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교회의 권한을 축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헨리2세의 동반자가 아닌 영락 없는 ‘교회의 아들’이었습니다. 헨리 2세는 분노에 차 그를 추방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중재로 다시 잉글랜드에 돌아올 수 있었지요.
헨리 2세(왼쪽)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토마스 베켓이 갈등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둘의 사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사람이라 여겼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겪었던 갈등과 기시감이 드는 장면입니다.
대성당의 살인과 대검찰청에서 정치적 살인
헨리 2세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의 가톨릭 개혁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토마스 베켓이었습니다. 그는 수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용히 읊조립니다. “Will no one rid me of this turbulent priest?”(이 문제적 성직자를 제거할 사람은 없는 것인가?).

토마스 베켓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고, 직접 살인을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네 명의 기사가 그의 본심을 알아챕니다. 무장한 채로 캔터베리 성당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토마스 베켓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죠. 네 기사들은 하나님의 성당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무참히 살육합니다. ‘대성당에서의 살인 사건’이었지요. 우정의 결말은 처참한 살인이었던 셈입니다.

토마스 베켓의 순교 장면을 묘사한 그림. 1786년 존 카터의 그림.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품.
헨리 2세의 ‘간접 명령’은 현대에서도 다시 회자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에서입니다. 2017년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마이클 플린에 대한 모든 조사를 해제하라는 간접 명령을 내린 것처럼 들었다면서 이 문장을 인용한 것이었지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러시아 스캔들 청문회에서 헨리 2세의 간접명령이 다시 인용돼 화제를 모았다. [AP=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추미애·박범계 장관 역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을 직무배제시키는 카드 역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3월, 윤석열 당시 총장이 사퇴를 결정해버렸지요. 개혁의 동반자에서 정치적 적으로 돌아서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악수(惡手)가 되어버린 정적 제거
토마스 베켓의 살인은 전 유럽을 달궜습니다. 대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는 대주교를 살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헨리 2세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합니다. 반면, 토마스 베켓은 신의 뜻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로 추앙받았지요.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그를 즉각 성인으로 성인품에 올립니다. 유럽 전역에서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캔터베리로 순례를 왔을 정도입니다.
토마스 베켓의 순교 장소인 캔터베리 대성당을 표시하는 조각상과 제단. <저작권자=Giles Blomfeld>
스코틀랜드 왕 윌리엄 라이언은 1178년 토마스 베켓을 추모하는 성당을 세웠고, 시칠리아의 마르살라 대성당은 베켓에게 헌정됐습니다. 인간 베켓은 죽었지만, 그는 영원한 성인으로서 부활한 것이었습니다.

라이벌 국가였던 프랑스 역시 잉글랜드를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었지요. 쏟아지는 비난에 헨리 2세는 정치 위기를 맞았습니다. 베켓의 무덤에서 흰 옷에 맨발로 공개 참회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화 베켓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2개 분야 후보로 올랐고, 최우수 대본상을 받았다. <사진 출처=IMDB>
대검찰청에서 검사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정치인으로서 윤석열은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왕의 동지에서 적이 됐던 토마스 베켓이 헨리 2세를 위기에 빠뜨렸듯, 검찰개혁 동지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를 위기에 몰아놓은 셈이었습니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게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겠지요. 1170년 영국, 2022년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다시 목도한 일입니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토마스 베켓이 살해된 곳에 촛불이 켜져 있다. 이곳은 유럽 전역에서 성지로 추앙받다가, 후에 종교개혁을 추진한 후손 헨리8세에 의해 파괴됐다가 재건됐다. <저작권자=ABrocke>
성 토마스 베켓의 석고상. 그는 유럽의 위대한 성인으로 불렸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가톨릭 광신자’라는 엇갈린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Saracen78>
PS1 정치에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있을 수 없습니다. 헨리 2세는 부패한 군주, 토마스 베켓은 고결한 성인이라는 공식도 거부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방의 정치적인 악수(惡手)가 상대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겠지요. 정치가 정도를 벗어났을 때 국민은 언제나 죽비를 내려치기 마련입니다. 집권 1년이 지난 현 권력도 기억해야 하는 명제입니다.

PS2 토마스 베켓은 중세 유럽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았지만, 최근 그 평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영국 왕권을 교황권에 종속시키려 했던 가톨릭 광신자라는 해석이 나오면서입니다. 실제로 2006년 BBC가 선정한 최악의 영국인 여론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사람이 토마스 베켓이었습니다. 1위는 ‘잭 더 리퍼’. 영국의 유명한 연쇄살인마입니다.

<네줄요약>

ㅇ헨리2세와 토마스 베켓은 교회 개혁의 동반자였다.

ㅇ하지만 베켓이 교회의 핵심인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된 이후 그는 철저히 교회의 이익에 봉사했다.

ㅇ결국 헨리 2세의 가신 기사들이 미사를 올리는 토마스 베켓을 살해했다. 그리고 이는 헨리 2세의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다.

ㅇ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스토리와 평행이론인 셈이다.

<참고문헌>

ㅇ찰스 디킨스, 영국사 산책, 옥당, 2014년

ㅇ로버트 스완슨, 12세기 르네상스, 심산,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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