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불행하면 평생 불행?…산악 고릴라는 달랐다
르완다 '산악 고릴라' 55년치 데이터 분석
어린시절 역경 이겨낸 고릴라, 생존력 우수
영장류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결과 뒤집어
경쟁 스트레스 없는 협력 문화가 원인인 듯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명언이 르완다의 ‘산악 고릴라(마운틴 고릴라)’에 통용될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 역경을 견딘 고릴라가 생존력이 더 강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다. 이 연구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와는 반대의 결론을 제시한 데다, 인간의 ‘회복 탄력성(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커 주목받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다이앤 포시 고릴라 펀드(DFGF) 소속 연구자들은 55년에 걸친 고릴라 연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를 통해 발표했다. DFGF는 고릴라 연구·보호에 평생을 바친 미국 동물학자 다이앤 포시를 기리기 위해 1978년 만들어진 고릴라 보호단체다.
스테이시 로젠바움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 조교수가 이끈 연구진은 르완다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산악 고릴라 250마리가량의 생애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에 앞서 연구진은 ‘6세 미만의 고릴라가 겪는 역경’을 6가지로 유형화했다. ▲어미의 부재 ▲아비의 부재 ▲극심한 폭력 노출 ▲사회적 고립 ▲사회적 불안정 ▲형제간 경쟁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같은 역경에 처한 새끼 고릴라 대부분은 6세를 넘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6세를 넘겨 생존한 고릴라는 다른 고릴라만큼 오래 살았고, 심지어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며 장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불우한 고릴라 ‘타이터스’의 반전
‘타이터스(Titus)’라는 이름의 고릴라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타이터스는 4세 때, 사람에 비유하면 초등생 1학년 정도의 나이에 밀렵꾼들로부터 아버지와 형제를 잃었다. 이어 불의의 사고로 여동생까지 잃고, 나중엔 어미와 누나와도 헤어졌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에 따르면 타이터스처럼 불운한 유년기를 보낸 고릴라는 수명이 짧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 케냐 암보셀리국립공원에서 진행된 '암컷 개코원숭이 연구 프로젝트’에 따르면 일찍 어미를 잃는 등 어린시절 3가지 이상의 역경을 겪은 개코원숭이는 그렇지 않은 원숭이보다 10년 일찍 사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만 하더라도 유년시절 학대경험이 암 발생, 면역력 저하 등 여러 질병을 초래하고 수명까지 단축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타이터스는 달랐다. 35년까지 장수했으며, 20년 이상 무리를 이끌었다. 새끼도 13마리나 낳았다. 연구진은 "강인한 회복탄력성은 타이터스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같은 종의 구성원에게서도 관찰된다"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고릴라더라도 성년이 된 뒤, 뛰어난 생존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서로 의지하는 환경이라면 트라우마 극복 가능
연구진은 산악 고릴라가 뛰어난 회복탄력성을 지니게 된 비결을 ‘수평적인 사회집단’에서 찾았다. 수컷 한마리가 왕처럼 군림하는 다른 영장류 집단과 달리, 산악 고릴라 집단은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비교적 유연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먹이를 두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도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초식성 동물인 산악 고릴라는 르완다 정부가 관리하는 고지대 서식지에서 살아간다. 먹이가 풍부한 덕에 다른 고릴라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경쟁 대신 서로를 지지하며 돕는다. 새끼 고릴라가 어미를 잃으면 그 빈자리를 다른 고릴라가 채워주는 식이다. 이같은 환경이 새끼 고릴라에게 경제적, 정서적 안정감을 주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이다.
로젠바움 교수는 미국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정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도 “심각한 정서적 상처를 받은 고릴라도 이런 안정적인 요인들에 둘러싸여 성장하면 회복이 가능한 것 같다”고 밝혔다.

산악 고릴라의 사례는 인간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젠바움 교수는 "(연구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며 "특히 빈곤층 어린이들은 불행한 어린시절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에서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조안 실크 애리조나 주립대학 영장류학자도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며 “인간의 건강과 웰빙에 대해 의미가 큰 연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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