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은 안 보이는 ‘코딩 권하는 사회’ 괜찮나?

한겨레21 2023. 5. 2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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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컴공 복수전공한 문과생이자 2년차 취업준비생이 경험한 ‘코딩 열풍’…
어학 점수 같은 스펙이 된 코딩, 직무·적성 고려 없이 달려들어
2023년 4월27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한 코딩 교육 학원의 강의실 모습. 학생들이 종일 학원에 머물다보니 자리마다 개인 짐이 많다.

‘코딩 교육 현실’ 취재에 참여한 정성환씨는 202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년 취업준비생 처지에서 본 코딩 교육의 문제점을 에세이로 정리했습니다. _편집자

2023년 5월8일 서울 지하철 이대역 인근에 있는 커리어넷 서울서부지사를 찾았다. 이곳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취업지원서비스 수탁기관이다. 진로적성검사, 상담, 직업교육 알선 등을 한다. 성재임 지사장이 반갑게 맞았다. 10년 이상 취업 상담을 해왔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최근에 코딩 하겠다는 학생이 많은가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성 지사장이 한숨 섞어 말했다.

“저희가 보통 한 해 100명 정도 상담하는데요, 2020년 이전에는 10명 중 2명꼴로 코딩을 하겠다 했는데, 지금은 코딩 하겠다는 사람이 4명 정도 돼요. 적성검사도 안 하고 주변 이야기만 듣고 코딩학원에 가겠다고 하면 저희는 뭘 더 할 수가 없죠.”

취업지원 상담자 10명 중 4명 코딩학원 선택

2013년 이후 꾸준히 늘어온 청년고용률은 2019년 43.5%를 기록했다가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42.2%로 내려앉았다. 이후 고용률 수치는 일부 회복됐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취업시장 온도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적잖은 사람이 코딩학원으로 쏠린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 지원이 늘면서 더 많아졌다.

계기는 다양하다. 대학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반 기업 인사 부문에 취업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을 익히는 이,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관련 일을 시작했지만 직업에 회의를 느끼던 중 친오빠의 추천으로 개발자를 준비하게 됐다는 이, 학부 수업이 어려워 취업을 위한 ‘과외’를 받는 컴퓨터공학 전공생까지 저마다 절박한 사람이 모인다. 성 지사장은 코딩학원을 선택하는 10명 중 6명은 코딩과 전혀 상관없는 문과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변 말만 듣고 진로를 정한 이들을 안타까워했다.

“10명 중 4명은 결국 포기해요. 2명은 한두 달 듣고서 너무 어렵다며 그만두고, 또 2명은 수당 때문에 그냥 출석만 해요.”

코딩은 이제 어학 성적처럼 취업을 위한 하나의 스펙이 됐다. 개발자로 취업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인사나 마케팅 같은 ‘문과 직무’를 희망하는 이도 프로그래밍이나 데이터 분석 경험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코딩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돌아보면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2017년에도 그런 조짐이 보였다. 2017년 대학교 문과 신입생들의 최대 고민은 ‘컴퓨팅 사고력’이었다. 내가 입학한 대학교는 201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으로 선정됐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선이 전교생의 필수 교양과목이 됐다. 학교는 ‘융합 소프웨어 전공’이라는 학부 과정을 새로 만드는 등 코딩 교육에 사활을 걸었다.

나도 어떻게든 배워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전공은 신문방송학이었지만, 3학년이 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려 컴퓨터공학과 1학년 전공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의 수강생 절반 이상이 타과생이었다. 타과생을 위해 분반을 따로 할 지경으로 학생들이 몰렸다. 컴퓨터공학 전공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듣기 힘들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공학은 만만치 않았다. 대학교 입학 뒤 처음으로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다. 시간이 모자라거나 잊어서가 아니었다. 도저히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였다. 무력감에 눈물이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반의 40%가 과제를 내지 못했다.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밤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심화 과목으로 갈수록 타 전공자 비중이 줄었다. 간신히 졸업 요건을 채웠지만 대학에서 배운 코딩만으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년 안에 적성이 아님을 안 게 어디냐”

다른 청년에게는 코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취재 중 만난 홍아무개씨에게 코딩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절실함이 묻어났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다니며 3년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기업 취업이나 공인회계사시험도 잠시 준비해봤지만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고교 때 수학을 잘했던 기억이 떠올라 ‘코딩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로 코딩학원에 등록했다.

“밤 10시 정도 수업이 끝나면 곯아떨어져서 자고, 생활비가 쪼들리다보니 어디 쉽게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도서관이랑 카페, 집을 쳇바퀴처럼 맴돌았어요.”

‘코딩을 배우면 누구나 취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반복되는 실패 속 마지막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에게 응원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아무개씨에게 코딩은 ‘남의 떡’이었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개발자가 실력만 있다면 고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코딩학원에 등록했다. 학원 수료 직후 운 좋게 바로 취업했지만, 현장은 학원과 달랐다. 학원에선 공부한 내용을 저녁에 복습했고, 내가 몰라도 가르쳐주는 이가 있었다. 회사에서 좋은 사수를 만났지만 ‘나 혼자 이 분야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결국 반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이씨는 “그래도 적성이 아님을 2년 만에 안 게 어디냐. 차라리 잘됐다”며 웃었다.

취업 준비 2년차에 접어든 나에겐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가장 힘들다. 불안은 한도 끝도 없고, 해소도 잘 안 된다. 누구도 내가 잘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려주지 않는다. 목에 건 사원증, 합격 통보 문자 외에 그 무엇도 우리를 위로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코딩학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할 일이 있다. 지금 당장 내가 쓸모 있는 일을 한다는 감각을 준다. 하지만 이는 그저 환상일 뿐이다. 학원을 나오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다.

청년 불안 달래는 위안처이자 도피처

코딩은 청년에게 남은 위안처이자, 그들이 공정하게 싸울 마지막 무대다. 20대 중반에 들어선 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틀렸다’ ‘지금까지의 공부로는 밥벌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학생과 백수 사이에 놓인 청년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한때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으로 몰렸던 이들이 이젠 개발자가 되게 해준다는 학원으로 몰려간다. 심지어 국가가 나서서 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더 번듯하고 있어 보인다. 적성에 맞는지 가늠하기엔 이들에게 시간이 없다. 빨리 취업하고, 학자금대출을 갚고, 전셋집이라도 구해서 ‘사람 구실’을 해야 한다.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외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 코딩 권하는 사회가 문제 아닐까.

글·사진 정성환 교육연수생 pray95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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