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전세사기 특별법’ 정쟁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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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깡통주택을 수백 채에서 수천 채까지 보유하며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한 이른바 '빌라왕', '건축왕' 등의 이야기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잘못된 선례를 만들면, 추후 보이스피싱이나 가상화폐 사기 등의 피해액에 대해서도 국가가 우선 보전하라는 논리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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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깡통주택을 수백 채에서 수천 채까지 보유하며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한 이른바 ‘빌라왕’, ‘건축왕’ 등의 이야기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를 강화하고, 전세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하는 등 각종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무용지물이다. 결국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잇달아 목숨을 잃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논의에 들어간 시점은 이미 3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뒤였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출발도 하기 전부터 지각인 셈이다.
여야는 지난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내용을 논의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난 네 차례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가장 큰 쟁점도 형평성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가 보증금을 먼저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경매 등을 통해 추후에 회수하는 식의 ‘선(先) 지원 후(後) 구상’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사기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경우에 일부라도 국고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한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잘못된 선례를 만들면, 추후 보이스피싱이나 가상화폐 사기 등의 피해액에 대해서도 국가가 우선 보전하라는 논리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공전하는 동안 전세사기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야가 특별법 내용을 놓고 정쟁을 벌이는 동안 피해자들은 일시적인 경·공매 중단 조치와 법률 상담 외에는 마땅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특별법)은 참사 이후 무려 205일이 지나서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정쟁에 집중하느라 특별법 제정 논의 자체가 지연된 데다, 여야 간 갈등이 격화하며 극적 타결과 합의 파기가 수차례 반복된 결과다.
당시에도 형평성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보상 대상에 참사 당시 구조·수습 활동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 등은 빠져 있어서 논란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에 나선 뒤 트라우마와 잠수병에 시달리다가 숨진 고 김관홍 잠수사의 이름을 따 ‘김관홍법’이라고 불리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2020년 통과되기도 했다.
전세사기 특별법에서도 정치권은 형평성을 따지며 정쟁할 필요가 없다. 최근 전세사기 사건이 불거진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의 피해자를 우선 구제한 뒤 개정안 등을 통해 추가적인 지원 대상을 논의해야 한다. 전세사기뿐 아니라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와 깡통전세 문제도 심각하다. 여야가 하루빨리 정쟁을 끝내고 전세 제도를 둘러싼 거시적인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박세준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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