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나의 작은 마을과 마음의 평화
내가 편히 쉴 곳은 어디 있을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최고로 멋진 아침’(‘레이디스’에 수록, 김선형 옮김, 북하우스)
이제 애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불안의 시인’이라고 표현했으며 ‘서스펜스의 대가’라고 불렸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애런에게 곧 어떤 큰일이 벌어지게 해서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도 있을 테고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독자에게 무슨 일인가 벌어질 듯한 서스펜스를 느끼게 해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서스펜스에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긴장을 유지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아는 우리 시대 최고의 범죄소설, 심리소설 작가로 손꼽혀온 그이기에.
애런은 ‘마을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한다. 친구도 사귀었는데 맨발로 마을을 돌아다니는 열 살짜리 여자아이다. 아이는 산책을 좋아하는 애런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들을 보여주었다. 아내가 살해된 폐가, 강 상류에 버려진 칼 공장. 그러나 애런은 알지 못했다. 그 아이네를 마을 사람들이 쓰레기들이라고 부르며 ‘남자하고 그렇게 어린애가 같이 다니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게다가 마을 사람들의 눈에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에 불과하다.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일자리를 구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여 줄까 싶어 시도해 보지만 거절당하고 모두 애런에게 등을 돌린다.
어떤 면에서 내가 부족했던 걸까?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걸까? 그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우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마을의 평화로움을 깨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당장 이 마을을 떠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발이 걸려 넘어진 애런의 눈앞에 커다란 방에서 보냈던 “영원한 가능성과 영원한 무의 아침들”이 스쳐 지나간다. 산책하다 농부가 준 희고 따뜻한 빵을 손에 들었을 때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처음 만끽했던 순간도.
서스펜스에서 인물의 욕망에는 진실을 밝히려는 욕망, 남을 이기려는 욕망, 그리고 타인에게 속하려는 욕망이 있다고 읽은 적이 있다. 휴식과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이 마을에 온 애런은 타인에게 속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으나 실패했다. 그 실패에 그의 잘못은 없으며 해명해야 할 무엇도 없다. 그는 타인들의 적대감과 판단으로 이상한 사람,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이스미스는 친밀한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함의 분위기를 혼미할 만큼 탁월하게 자아낸다”고 타임은 평했다. 어디선가 애런은 다시 ‘최고로 멋진 아침’을 맞게 될 수 있을까. 아침 햇살이 비쳐 들고 오해와 적대감과 배척이 없는 곳에서. 그런 어딘가가 휴식이 필요한 애런의, 독자들의 목적지가 될 수 있기를 아마도 작가는 바랐으리라.
조경란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나정 측 “손 묶이고 안대, 강제로 마약 흡입”…경찰 조사 후 첫 입장
- 매일 넣는 인공눈물에 미세플라스틱…‘첫방울’이 더 위험?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나 집주인인데 문 좀”…원룸 들어가 성폭행 시도한 20대男, 구속
- “내 딸이 이렇게 예쁠 리가” 아내 외도 의심해 DNA 검사…알고보니 ‘병원 실수’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