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와 소신 사이… 한양으로 간 이들의 선택은
충군 형벌 받은 유생 이옥 이야기
조선 후기의 개현군주 정조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이야기꾼 태어난 과정 등 흥미
18세기 후반 ‘민초 세계'도 엿봐
1800년 3월 세자 책봉을 축하하는 특별 과거, 이른바 별시가 열리자, 수많은 유생이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한양 인구가 30만 정도였는데, 초시 응시자만 무려 11만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미루어 알 만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조의 귀정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만큼이나 어리석고 시대착오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과거에 급제해 가문을 일으키려면 그 어리석은 어명과 타협해야 했다 … 이옥의 내면에서는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결국 과거를 포기하고 소품체를 통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소품체는 기존 고문의 낡은 사유와 천편일률적 상투적 글쓰기에서 벗어나서 여성과 중인, 평민, 노비 등 작고 낮은 존재의 삶과 생활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 역시 과감하게 표현하는 문장.
청년 조준이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세책상의 권유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 설낭으로 재탄생하게 되면서 다양한 인물과 함께 파란만장한 새 이야기가 펼쳐진다. 담배상인 선경, 성화 화가 효연, 여의원 애월….
작품은 기본적으로 조선 후기의 개혁 군주로 평가돼 온 정조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자신의 소품체를 통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이옥 간의 엇갈린 운명을 모티브로 삼은 역사소설이지만, 작가의 마음이 ‘문무자’ 이옥에 가 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추리소설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흥미를 더하는 가운데 18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소설의 미덕이다. 과거 시험장 풍경,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와 세책방, 서화점, 운종가의 활기찬 모습, 백정들이 사는 반촌과 그들의 생활, 조선 후기를 강타한 서학 신도들의 모습까지…. 다음은 소설 속 과거 시험장에서 대리시험(거벽)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의 한 장면.
“다섯 사람은, 밤섬 마대치 촌장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아침식사를 했다. 잠시 후 나귀 다섯 마리를 나누어 타고,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사이좋게 따뜻한 남쪽으로 향했다.”
책은 출판사 싱긋에서 펴내는 ‘나이트노블’ 시리즈의 첫 책이다. 나이트노블 시리즈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재미와 긴장을 추구하는 작가의 작품을 발굴해 독자에게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y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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