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통해 배운 ‘슬픔과 함께 살기’[책과 삶]

허진무 기자 2023. 5. 1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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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아는 사람
유진목 지음
난다 | 208쪽 | 1만6000원

시인 유진목은 2016년 한 문예지에 실은 산문에서 가해자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과거 스토킹 피해 사실을 적었다. 그의 대학 동아리 선배인 시인 박진성은 트위터를 통해 유진목과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유진목과 박진성은 서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불기소 결정했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 판단은 달랐다. 2021년 1심 법원은 박진성이 유진목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1160만원으로 올렸다.

재판은 이겼지만 유진목의 몸과 마음은 수년간 쌓인 분노와 절망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언제든 죽으면 된다고, 그러면 다 끝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사람”이었다. 지난해 여름 베트남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노이에 세 번 다녀오며 적은 조각글과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56장이 산문집 <슬픔을 아는 사람>에 실렸다.

그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붙잡혀 살다 “계속해서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에만 순순히 이끌리고 싶어” 하노이로 갔다.

하노이에 세 번째 갈 때는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불행한 내가 본 것을 행복한 내가 다시 보기 위해 몸을 움직여 멀리 떠난 것”이라고 적었다.

유진목은 하노이 근교 지역인 닌빈을 두 번째 여행하며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린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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