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1L 마실 수 있다”는 영국 교수… 믿을 만한 주장일까? [미드나잇 이슈]

이희진 2023. 5. 19. 21: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후쿠시마 앞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1ℓ 물이 내 앞에 있다면 마실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만든 자리에서 나온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교수 웨이드 앨리슨(82)의 말이 한국을 흔들었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위험성이 과장됐다며 ALPS로 처리된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앨리슨 교수는 누구인가. 그리고 “믿어도 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그의 주장을 믿어도 되는 걸까.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탱크. 연합뉴스
◆“방사선과 원자력의 위험성은 과장됐다”

앨리슨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교수로, 40년 넘게 방사선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앨리슨 교수가 학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9년 발간한 책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공포가 과학을 집어삼켰다’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의 원제는 ‘Radiation and Reason-The Impact of Science on a Culture of Fear’. 책의 핵심 내용은 방사선과 원자력의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것. 앨리슨 교수는 저선량 방사선, 즉 연간 100 밀리시버트(mSv) 이하의 방사선은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앨리슨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저선량 방사선 영향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공포가 집어삼킨 과학’을 주제로 연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만약 (ALPS로 처리한) 물을 1ℓ 마신다고 해도 계산하면 방사능 수치가 자연적 수치 대비 80% 추가로 오르는 것뿐”이라고 했다.

ALPS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가 배출하는 저선량 방사선에 장기적으로 노출됐을 때 영향에 대한 연구가 없어 안심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삼중수소도 수소의 한 형태라 물과 함께 씻겨나가기 때문에 몸 안에 머무르는 시간은 12~14일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앨리슨 교수는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식수나 공업용수로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해양 방류는 가장 쉽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안전 조치를 하는데, 이미 안전한 걸 더 안전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안전하지 않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앨리슨 교수, 법정에선 2분도 못 버틸 걸”

앨리슨 교수의 이 같은 주장, 믿을 수 있는 걸까.

학계에선 앨리슨 교수의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앨리슨 교수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진 주장은 아니란 얘기다.

관련 논의를 찾아보면 스웨덴 철학자인 스벤 오베 한손 교수는 2011년 앨리슨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냈다. 한손 교수는 “방사선 방호에선 ‘문턱 없는 선형 가설’을 암 위험 평가의 표준으로 사용한다”며 “이 가설에선 방사선에 많이 노출될수록 발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언급한 ‘문턱 없는 선형 가설’은 발암 물질의 경우 역치가 없어 위험성이 노출량에 따라 끊임없이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방사선으로 인한 암 발생 가능성 등 건강위험을 추정해서 관련 위험을 최소화 하거나 없애는데 필요한 관리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널리 사용된다. 

또 한손 교수는 앨리슨 교수가 ‘암 환자를 치료할 때도 방사선을 활용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한손 교수는 “이 주장은 완전 잘못된 것”이라며 “방사선 치료는 주변 조직과 신체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종양 부위에 치료를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엔지니어 출신 사업가 디케이 마카이도 2011년 앨리슨 교수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당시 앨리슨 교수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후유증과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은 원자력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와 불신을 야기했으나 원폭 생존자들의 건강에 대한 장기적 데이터 분석 결과 인체가 방사능 및 화학적 공격으로부터 얼마나 스스로 자신을 잘 보호하고 있는지가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카이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 마틴 톤델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반박 근거로 들었다. 톤델 교수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북스웨덴 지역의 암 발생률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는 2004년 “다른 복합인자가 없다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북스웨덴 지역에서 방사선 피폭과 연관한 약간의 암 발생 증가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본 도쿄에 있는 도쿄전력(TEPCO) 본사 앞에서 시위대가 '오염수 방류 반대' 현수막을 들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마카이는 또 “방사선과 건강에 관련된 40번 이상의 재판에서 전문 증인으로 활동했다. 여기엔 핵실험 퇴역 군인들이 암을 유발한 시험장에서의 피폭에 대해 영국 정부를 고소한 경우가 포함돼 있다”며 “이 사건에서 (원고가) 모두 승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왜냐하면 판사와 배심원이 있는 법정에선 앨리슨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2분을 버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법정에선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옥스퍼드 대학 암연구 전문가 질리스 매키너 교수도 이같은 논란 당시 “방사선 조사의 위해성 여부에 대한 논쟁의 문제점은 관련 데이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도 원폭 피해에 따른 암발병 사례가 많지 않아 저수준 방사선 노출에 대한 위해성에 대해서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맨체스터 대학의 병리학자 리처드 웨이크포드 교수는 “(세포 내부의 자가) 수리 절차가 100% 효과적인지 전혀 알려진 바 없다”면서 방사선을 쪼일 경우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파괴되며 이렇게 되면 세포 내부의 메커니즘에 의한 자체 복구가 어려워진다고 반박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2021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영국·프랑스 몇 개 나라를 묶어서 보면 100m㏜ 이하에서 암 발생이 100m㏜ 이상일 때와 똑같은 기울기로 증가하는 걸 볼 수 있다”며 “저선량에서도 암이 발생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최근 우리 건강보험자료를 이용해 연구한 결과에서도 어렸을 때 엑스레이를 찍었던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 차이가 보인다는 게 보고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저선량 방사선 피폭이 암을 유발하는지는 학계에서도 논쟁이 다분한 주제다. 앨리슨 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유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