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없는 방 주고 주 72시간 노동…‘계절 노예’ 전락한 ‘계절 이주노동자’

조해람 기자 2023. 5. 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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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토론회서 실태조사 공개
각종 비용, 강압적 이탈방지 조치
임금 직접 안 주고 보증금 떼기도

“출국 전 네팔 지자체가 소개한 컨설턴트는 송출비용으로 900만원을 요구했고, 한국행 항공권과 건강검진 비용까지 사비로 냈다. 이 비용을 대느라 빚을 져서 이자까지 생겼는데, 5개월 동안 일한 월급은 적어서 적자를 봤다.”

‘계절노동자’ 제도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을 볼모로 잡힌 채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아시아이주자포럼은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계절 이주노동자 해외 조사 결과 발표 및 제도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2015년 도입된 계절노동자 제도는 국내 지자체들이 해외 각국 지자체들과 협약을 맺어 파종·수확기 등 단기적(3~5개월)으로 일손이 필요한 기간에 노동자를 제공받는 제도다. 올해 상반기엔 전국 지자체 124곳에 역대 최대 규모인 2만6788명이 배정됐다. 이탈률을 낮춰야 법무부로부터 다음해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는 각 지자체들은 노동조건 개선보다는 강압적인 이탈 방지 조치에 초점을 둔다.

대표적인 악습이 임금의 상당 부분(약 60% 수준)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대신 고국 지자체가 관리하는 계좌에 ‘강제적립’하는 것이다. 이는 “임금은 통화로 직접 노동자에게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3조 1항 위반이다. 중도이탈을 하면 받을 수 없는 ‘귀국보증금’을 두기도 한다.

한 지자체가 필리핀 지자체와 맺은 양해각서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시급인 반면, 휴일은 ‘월 2일’로 정해져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일한 몽골 출신 노동자들은 연구진에 “숙소 비용이 없다고 안내받았는데, 한국에 입국한 뒤에 숙소 비용을 내라는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다”며 “난방도 욕실도, 화장실도 없는 숙소에서 살았다”고 했다.

전북 고창의 수박농장에서 일한 네팔 출신 아디카리는 “주 6일 12시간씩 일했는데 월급은 200만원이었다”며 “14개 비닐하우스를 혼자 관리했는데 머리에서 흐른 땀이 장화 안을 적실 정도였고, 너무 더워 얼음 봉지를 등에 넣고 일하기도 했다”고 했다.

고국 지자체가 관리하는 통장에 강제적립된 임금이 얼마인지, 어떻게 관리되는지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한 필리핀인은 “매달 급여가 얼마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귀국 전 통장을 받아 보니 처음 보는 누군가가 20만원만 남기고 인출 또는 이체했다”며 “인출한 돈을 내 계좌로 입금했는지, 누가 얼마를 가져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연구진은 국내 실태조사 등을 거쳐 하반기 최종 보고서를 완성할 예정이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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