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쫓겨난 학폭 피해 아이들 “다시 버려졌다”
2013년 민간 설립 후 300명 위탁
피해 학생들의 학업 이수 등 도와
건물 안전 이유 3일전 공문 통보
조정실씨(65)는 아이들 손을 놓지 못했다. 수료증을 받아든 수지(15·가명)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잘 지내. 꼭 다시 만나자.”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요.” 수지가 참았던 눈물을 보이자 센터장인 조씨가 아이의 마른 몸을 껴안았다. 객석에 앉아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른 어머니들도 따라 울었다. 20여명이 모인 ‘작은 수료식’은 눈물바다가 됐다.
전국 유일의 학교폭력 피해자 기숙형 지원기관인 ‘해맑음센터’가 19일 문을 닫았다. 교육부는 불과 사흘 전 공문을 보내 건물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최근 안전진단에서 기숙사 건물이 D등급,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교사동이 E등급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센터는 수년 전부터 시설이 낡아 이전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지만 교육부의 통보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수지는 “수료가 아니라 퇴교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해맑음센터 교사동과 강당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띠가 둘러쳐져 있었다. 수료식은 강당 출입구 앞 빈터에서 진행됐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석 달가량 이곳에 머무른 7명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감사하다’고 했다.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하고픈 말을 전하는 아이도, 고개를 숙인 채 “다들 감사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들어가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 1년가량 이곳에 머무르려 했던 아이들이다.
해맑음센터는 10년 전인 2013년 만들어졌다. 학교폭력 피해 당사자 어머니인 조씨가 주도해 센터장을 맡았다. 20여년 전 그는 딸이 동급생들에게 집단폭력을 당하고 한 달 넘게 입원하는 일을 겪었다. 이후 수많은 학교폭력 가족들을 만나며 힘을 모았다. 센터는 현재 아이들이 교과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시·도교육청 위탁 지정 기관이 됐다. 10년 동안 300명 넘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일부는 “다시 다니던 옛 학교로”
대부분 정부 운영 ‘Wee센터’행
가해 학생들과 함께 생활해야
수지는 “정부가 우리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수지는 “이곳에서는 피해 경험이 있는 친구들끼리만 모여 있고 24시간 상담도 받을 수 있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면서 “나가야 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마냥 슬펐는데 점점 화가 났다. 다시 가해자들 속에 우리를 던져놓고 ‘알아서 살아봐라’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준이(15·가명)도 “돌아올 수만 있으면 무조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 있으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며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 가기 싫다”고 했다. 민준이는 센터를 떠나는 이날 학교 주변을 맴돌았다. 2~3주 전 친구들과 직접 심었다는 화분을 가리키며 “물 주는 사람이 없어서 곧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 7명 중 대다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지원기관인 ‘Wee센터’나 ‘Wee스쿨’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학부모와 센터 측은 이 기관들에서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함께 섞여 지내야 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오후 3시, 두 손 가득 짐을 챙긴 아이들이 하나둘 떠났다. 조씨는 모두 떠난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주방 이모’라는 중년 여성도 아쉬운 듯 혼잣말을 했다. “우리 아이들 오늘 삼계탕 먹기로 한 날인데….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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