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의 죽음과 의병장의 죽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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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별곡> 과 <사미인곡> 의 작가 정철(鄭澈)은 살아 있을 때부터 비난하는 말이 많았다. 사미인곡> 관동별곡>
정철은 음주로 일관했고 조헌은 늘 그것을 나무랐다.
정철이 강진현(康津縣)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정철이 그랬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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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의 작가 정철(鄭澈)은 살아 있을 때부터 비난하는 말이 많았다. 물론 당쟁과 관련된 비난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 하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술독에 빠져 살았다는 비난이다. 스스로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자고 했으니, 어지간히 마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마신 술은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선조가 의주에 머무르고 있던 1592년 7월의 일이다. 조선의 요청으로 명(明)은 요양부총병(遼陽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의 부대를 보내 평양의 왜군을 공격하게 하지만(17일), 조승훈의 부대는 패배하고 퇴각하고 만다. 대책 논의를 위해 선조는 대신(大臣)들을 불러 어전회의를 열었다(25일). 하지만 영중추부사 정철은 술에 취해 참석하지 않았다. 술꾼에게 나랏일은 뒷전이었다.
조헌(趙憲)은 정철의 음주행각을 극도로 싫어했다. 1581년 전라도 도사(都事)가 되었을 때 관찰사는 정철이었다. 정철은 음주로 일관했고 조헌은 늘 그것을 나무랐다. 하지만 알코올중독은 주변의 충고로 낫는 병이 아니다. 조헌은 탄식했다. “수령들은 쥐어짜낸 백성의 고혈(膏血)로 술상을 거룩히 차려 관찰사에게 아첨을 떨고, 관찰사란 사람은 백성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술 퍼마시는 것을 일삼고 있구나! 그 술이 백성의 피와 무엇이 다를까?”
정철이 강진현(康津縣)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호남에서 제일가는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바닷가 누각에서 관찰사는 술판을 벌였다. 찾아온 손님들로 자리가 가득했다. 흥이 한껏 오른 정철이 술잔을 채워 조헌에게 건넸다.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마셔야지! 그대는 어찌 그리 깐깐한가?” 정철은 조헌보다 8살 많았고 또 관찰사는 도사의 직속상관이었다. 술잔이 돌아 앞에 이르자 조헌은 손을 저어 물리쳤다. “어떻게 백성의 피를 마실 수 있겠소!” 그는 끝내 입술을 적시지 않았다. 흥성거렸던 술자리가 서늘해지건 말건 알 바가 아니었다.
술에 취해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정철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없었다. 도리어 중용되어 1593년 사은사로 북경에 파견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북경에서 문제가 있었다. 황제에게 왜군이 조선에서 모두 철수했다는 거짓 보고가 올라갔던 것이다. 정철이 그랬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다만 북경에 체류하면서 외교의 최일선에 있던 사람으로서 나랏일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철은 아마 북경에서도 마셨을 것이다!
조헌은 알다시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였고, 정철이 어전회의에 불참했던 25일로부터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8월18일 금산(錦山)에서 고바야가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왜군과 싸우다가 의병 7백 명과 함께 전사한다. 의병장의 장렬한 죽음이다. 정철은 1593년 11월 귀국하여 강화도에서 지내다가 술병으로 죽었다. 나라와 백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었던 때다. 어느 쪽의 죽음이 떳떳한 것인가. 원 없이 마셨던 술꾼 정철인가, 장렬히 전사했던 의병장 조헌인가.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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