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소멸 운 띄운 정부…"투기성 갭투자 규제 강해지나" 촉각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3. 5. 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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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 대폭 손질 예고
대출 축소·전세가 상한제 등
사기 막을 전방위 대책 고심
제3기관에 보증금 맡기는
'에스크로'엔 임대인 반발 커
일각선 "인위적 통제 부작용
월세 소득공제 확대 유도를"

◆ 갭투자 규제 논란 ◆

"전세사기 피해대책을 수습하고 나면 '갭투자'나 보증금을 일단 다른 데 쓰고 다음 임차인에게 돌려받는 제도 자체에 손을 댈 생각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임대차제도 대수술을 예고한 가운데 관련 업계는 물론이고 전세 거주 실수요자와 주택임대사업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세보증금은 임대인 입장에서 임차인에게 자금을 무이자로 차입하는 사금융 역할을 하는 만큼 제도 개편 방향에 따라 갭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앞서 임대차3법의 무리한 입법으로 시장 혼선이 커진 사례가 있는 만큼 점진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9일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국토부는 주택임대차법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원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제도가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모든 방안을 올려놓고 생태계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제도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우선 거론되는 방안은 에스크로제도 도입이다. 전세 에스크로제도는 보증금을 제3기관에 맡겨두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전세 계약 기간에 활용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일부 임대인은 보증금을 이용해 무분별한 갭투자에 나서다 전세 만기가 도래하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보증금을 일부라도 예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갭투자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예치해 이자를 받겠다는 집주인은 드물다"며 "에스크로제도 도입은 갭투자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기 돈 없이 보증금으로만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전세가 상한선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70%를 넘지 못하도록 보증금 규모를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주택담보대출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실행되는 만큼 사금융 성격의 전세보증금에도 상한선 비율을 두는 것이 세입자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세는 여전히 세입자가 선호하는 주거 유형이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만큼 정부가 억지로 전세를 없애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차인이 대출 없이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다면 월세보다 주거비 부담이 작다"며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제도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거 비용 측면에서 전세 선호도가 유지되는 만큼 정부는 월세의 이점을 높여 수요를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월세의 소득공제 확대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세 수요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는 정부의 무분별한 보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많다. 이에 정부는 전세사기 예방 대책으로 전세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하향 조정했다. 이와 더불어 금융기관이 전세대출을 내줄 때 정부 보증을 믿고 심사를 허술하게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전세와 관련한 정부의 보증 비율을 점차 낮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의 전세제도 개편과 별개로 전세사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무분별한 갭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세종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부동산 법인회사 대표 50대 A씨와 남편을 사기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A씨 보유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전세 만기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피해를 봤다며 A씨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 A씨 부부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으로 세종 일대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 등을 다수 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대출이 막혀 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 심사 과정에서 법무부가 "단기간 여러 채 갭투기한 것도 사기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 만큼 앞으로 임대인도 갭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준규 법무법인 제이엘 변호사는 "무자본 갭투자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피해자로 인정되면 임대인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가 섣불리 임대시장에 개입하면 혼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임대사업자 제도를 개편해 임대차 시장 변화를 도모해볼 수 있다"며 "월세형 임대사업자를 육성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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