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집값 불패 신화의 아쉬움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2023. 5. 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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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를 아예 금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장이 요즘 종종 들린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는 전세사기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다.

그리고 그렇게 된 건 매우 낮은 수익률에도 기꺼이 집을 사들여 전세를 놓는 집주인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행위가 불가능해지니 세입자에게 임대할 집은 현금 부자들이나 대출이 쉽게 나오는 고소득자들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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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전세를 아예 금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장이 요즘 종종 들린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는 전세사기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다. 전세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이니 그걸 없애거나 금지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전세를 금지해도 될까.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주거비가 저렴한 편이다. 통계를 보면 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은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대다수 나라들이 2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15%에 그친다. 왜 그럴까. 세입자의 부담이 적은 전세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은 비싼 월세 대신 전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시중금리가 갑자기 급등하는 바람에 전세대출 이자를 내느니 월세를 내는 게 저렴한 상황이 됐지만, 그건 정말 이례적인 경우다.

ⓒ연합뉴스

아무튼 한국에는 5억원에 집을 사놓고 그 집을 3억원에 전세를 놓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집주인이 많다. 5억원에 집을 사서 월 200만원의 월세를 받아 세후 4% 정도의 수익률을 올려보려는 다른 나라와 비교된다. 세입자들은 전세금 3억원을 은행에 넣어뒀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보다 1년치 월세가 비싸다면 기꺼이 전세 3억원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주택임대전문 기업이 우리나라에는 희귀한 이유도 집을 사서 세를 놓아 얻는 수익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건 매우 낮은 수익률에도 기꺼이 집을 사들여 전세를 놓는 집주인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주택임대사업은 애초부터 수익성이 안 나오는 사업인 것이고, 기업형 주택임대사업을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전세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제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행위가 불가능해지니 세입자에게 임대할 집은 현금 부자들이나 대출이 쉽게 나오는 고소득자들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임대용 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월세가 지금보다 올라가게 될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월세가 오르고 나면 괜찮은 월세 수익률을 노린 투자자들이 나타나게 되겠지만 지금처럼 파격적으로 저렴한 월세는 사라지게 된다.

그 충격은 중산층보다는 서민들이 더 강하게 받게 된다. 지금은 내 집이 이미 있는 집주인도 빌라를 하나 더 사서 전세를 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빌라나 다가구 같은 서민 주택은 전세가율이 높기 때문이다. 3억원에 팔리는 빌라의 전세금이 2억5000만원쯤 하다 보니 5000만원만 있어도 빌라를 한 채 사서 세를 놓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그런 투자를 하는 집주인이 계속 생겨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빌라를 지어 파는 건축업자들은 '서울 역세권 25평 실투자금 5천만원'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여놓고 빌라를 지어 쉽게 팔고 또 다른 동네로 가서 땅을 사고 다시 빌라를 짓는다. 그 덕분에 서민용 주택이 계속 시장에 공급되는 것이고 서민들은 저렴한 월세에 비교적 깨끗한 집을 구해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서민들은 그럼 비싼 월세 아니면 전세 사고 또는 전세사기의 두려움 둘 중 하나는 꼭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불행히도 그게 사실이다. 집값이 계속 우상향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집값 불패의 신화가 사실은 집주인뿐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보이지 않는 혜택이었다는 걸 우리는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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