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꿀벌 다시 보려면…여의도 1000배 규모 꽃밭 필요[위기의 푸른 점]
김예윤기자 2023. 5. 19. 16:36
1990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보이저 2호가 해왕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사진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 창백하게 빛나는 푸른 점은 우리가 우주 속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과 착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를 구해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없다.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인류의 모든 역사,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이 점 속에서 존재해왔습니다. 이 코너명은 위기에 처한 푸른 점인 지구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푸른 점이 영영 빛을 잃기 전에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쉴 새 없는 5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들을 돌아보자는 날들입니다. 그런데 20일 또 하나의 날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 벌의 날’입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이 점 속에서 존재해왔습니다. 이 코너명은 위기에 처한 푸른 점인 지구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푸른 점이 영영 빛을 잃기 전에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쉴 새 없는 5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들을 돌아보자는 날들입니다. 그런데 20일 또 하나의 날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 벌의 날’입니다.
벌이 얼마나 중요하냐고요?
꿀벌은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꼽은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물 5종’의 하나입니다.
꿀벌을 포함한 화분매개자(꽃가루를 날라 수분을 돕는 생물, 주로 곤충)가 없다면 꽃과 식물이 번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벌을 비롯한 곤충을 통해 번식하는 식물은 토끼풀 같은 꽃뿐 아니라 사과, 호박, 수박, 옥수수 등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이 포함됩니다.
UN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90%의 식량을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벌의 수분 매개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최대 5770억 달러(약 770조 5800억 원)에 달합니다.
2017년 국제연합(UN)은 생태계에서 꿀벌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매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꿀벌 기념일을 왜 6년 전에야 정했을까요? 누군가의 소중함은 그를 잃어버릴 때 알게 되곤 하죠.
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 10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최초로 관찰된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 등에서 ‘꿀벌 군집 붕괴 현상 (Colony Collapse Disorder, CCD)’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012~2013년 사이 겨울 꿀벌 개체 손실률은 3.5%(리투아니아)에서 최대 33.6%(벨기에), 7개국(벨기에,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라트비아 및 영국)이 15%를 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는 최근 꿀벌 등 화분매개자의 감소로 매년 약 40만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꿀벌 실종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18일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선 지난해 겨울 꿀벌 78억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지난해 9~11월 사이에는 약 50만 개의 벌통이 텅텅 비워졌고요. 약 100억 마리가 사라진 겁니다.
한국양봉협회는 지난달 기준 협회 소속 농가 벌통 153만 7000여 개 가운데 61%인 94만 4000여 개에서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를 환산하면, 올해 넉 달만 약 140억 마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따라 국내 양봉 산업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꿀벌의 화분 매개 경제적 가치는 약 5조8000억원으로 추정되고, 화분 매개에 의존하는 농작물 생산량은 약 270만t으로, 전체 농작물 생산량의 17.8%를 차지합니다.
이런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은 왜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원인을 두고서 여러 주장이 분분합니다. △제초제나 살충제 노출로 인한 급성/만성 중독 △인공 사육으로 인한 유전 다양성 감소 △검은말벌바이러스, 중국가시응애 등 병해충 등이 이유로 꼽힙니다. 전문가들 역시 한 가지만을 이유로 꼽을 순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 영향 큰 것으로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벌과 꽃이 만나는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200여년 사이 전 지구의 온도가 1.09도 오르면서 벌이 동면에서 깨기 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봄꽃 개화일은 과거 1950~2010년대보다 3~9일 빨라졌습니다. 벌과 꽃의 생체시계가 어긋나 만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또 국내에서는 꿀벌에게 꽃가루와 꿀이라는 먹이를 주는 매실나무, 동백나무, 해바라기 등의 밀원(蜜源)이 감소한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벌은 아까시나무, 밤나무, 유채 등 다양한 식물의 꿀과 꽃가루를 섭취합니다.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영양 스트레스를 받아 성장이 둔화하고 수명이 단축되며 생식 능력도 저하되고요.
그런데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2020년 기준 밀원은 14만6000ha로 1970~1980년대 47만8000ha보다 약 33만ha 감소했습니다. 제주도의 1.8배, 여의도의 1145배 면적의 밀원이 사라진 셈입니다. 특히 천연 꿀 70%가 생산되는 아까시나무의 경우 1980년대까지 32만ha에서 현재는 3만6천ha 정도에만 남아있습니다. 보고서는 밀원을 30만ha(축구장 42만8000개 넓이)는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를 이끈 안동대 연구팀은 밀원 수림을 조성할 때 과거 1970년대 아까시나무 등에만 집중해 심었던 것과 달리 ‘종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꿀벌 실종에 심각성을 느낀 미국에서는 2014년, 유럽연합위원회는 2018년 벌을 비롯한 화분 매개체 보호를 위한 각각 연방 수분매개 건강위원회(Federal Pollinator Health Task Force)와 유럽연합 수분매개체 계획(EU Pollinator Initiative) 등을 설립한 바 있습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운동가는 “꿀벌 등 수분 매개체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장기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벌 살리기 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예윤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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