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전기요금 못내 독촉장 들고와” 몇 만원이 없는 삶 [소액생계비리포트]
열심히 산다고 누구나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락한 잠자리, 균형 잡힌 식사, 계절에 맞는 옷차림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잘 짜였는가가 선진국의 요건이라면, 한국은 몇 점일까.
금융위원회는 3월 27일 소액생계비 대출을 출시했다. 신용점수를 따지지 않고 당일 최대 100만원을 대출해주는 이 상품은 한 달 만에 2만5000여명이 몰렸다. 이들의 평균 대출금액은 61만원. 병원비를 내려고, 전기요금이 밀려서 등 적게는 몇 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없어서 빌리는 이가 이렇게나 많다.
헤럴드경제 특별취재팀은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이들을 직접 만났다. ‘씁쓸한 흥행’을 가져온 정책을 만든 까닭도 듣고, 생계비를 빌리려 온 이들이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상담사에게도 물었다. 돈이 없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각자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진 비극은 누구에게든 올 수 있다.
[특별취재팀=홍승희·성연진·서정은·김광우 기자] # “대학 졸업한 지 2~3년 된 친구가 생계비 대출을 받으려고 왔어요. 졸업 후 취업을 해 학자금 상환이 시작됐는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직장을 잃은 거죠. 학자금 대출이 6개월 이상 연체되고 통신비와 공과금 등이 밀리면서 월세도 감당 못해 고시원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일용직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진작 햇살론이나 관련 상품을 알았다면 지원받았을 텐데 안타까웠죠. 저희가 홍보가 부족했어요.”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만난 이혜림 서민금융진흥원 대리는 하루에도 15~16건의 가슴 아픈 사연을 만난다. 한 번은 홀로 두 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수술비 때문에 센터를 찾았다. 대출중개업소를 알아보던 차에 소액생계비 대출이 실행되면서 아이 엄마는 “열심히 살아보려니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힘들어도 보람이 느껴지던 때다.
안쓰러운 사연은 끝이 없다. 또 다른 날은 배달대행을 하다 사고를 당해 1년 동안 소득이 없던 가장을 만났다. 이 대리는 “자녀가 셋인데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배우자의 소득만으론 생계유지가 어려웠다”면서 “소득이 없어 대출 실행도 안 되고 결국 월세나 관리비 등 주거비가 계속 체납되고 있었는데 소액생계비 대출로 이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몇 만원이 연체돼 독촉장을 들고 오는 이도 많다. 물론 모두가 가슴 아픈 사연을 들고 오진 않는다. 알고 보니 연소득 3500만원을 넘겨서 대출이 되지 않는 이도 있고, 자녀 피아노를 사줘야 한다고 온 주부도 있다. 국세 체납기록이 있어 대출 실행이 거절당한 경우도 있다. 이 대리는 “엄청 위급한 생계비가 대상이라 1차 대출 50만원까지는 조건만 맞으면 대출을 실행하는데 상황에 맞지 않는 분이 오면 하루 더 생각해보라며 돌려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20~30대는 주로 직업을 구하지 못해 찾아온다. 월세나 공과금이 밀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령층은 임플란트 등 큰돈이 들어갈 때 불법 사금융의 피해를 보기도 한다. 그는 “상담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빚이 계속 쌓여가는 분들을 참 많이 봤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노년층 사이에선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센터를 찾아 빈 손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이 대리는 “가장 안타까울 때는 상담이 한 달 넘게 차 있는데 사전 예약 없이 찾아온 노인분을 그냥 돌려보낼 때”라며 “상담사들은 아침 9시부터 모든 체력을 쏟아, 예약돼 있는 사람들을 받아내기도 벅차 그냥 찾아오신 분들을 봐드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분들은 한 달 뒤에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더 악화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추가 상담인력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현재 전국에 소액생계비 대출창구는 50개. 상담사 한 명이 신청인 한 명당 20~30분씩 진행해 하루 15~16명과 상담한다. 그는 “창구를 늘려야 하지만 소액생계비만큼은 대면상담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햇살론 등 타 서민금융과 달리 소액생계비를 받으러 온 계층이 취업 연계, 불법 사금융 피해, 휴면예금 찾기 등 다양한 복합 상담 필요성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소액생계비 50만원 대출을 받은 노인에게 휴면예금 9만원을 찾아준 적도 있다고 한다. 1년치 이자다. 그는 “소액생계비는 휴면예금 조회를 의무적으로 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2만~3만원이 적지만 50만원 대출을 받으러 온 분들한테는 큰돈이다. 그 돈이면 네다섯 달치 이자를 낸다”고 했다.
최대 100만원까지 대출이 되지만 1차 대출 한도는 50만원으로, 6개월 이자를 성실 상환하면 추가 50만원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주거나 의료비 등 목적 증빙이 있으면 한 번에 100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대리는 “구비서류를 잘 안 챙겨오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신분증, 통장 외에 월세나 병원비 등 영수증이 있어야 정성평가를 통해 한도 증액이 된다”고 강조했다.
hss@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woo@heraldcorp.com
yjsung@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방시혁, 340억 LA 대저택 최초 공개…욕실 9개·인피니티 풀까지
- “나오자마자 2시간만에 완판” 삼성 긴장한 ‘투명폰’ 등장
- 김태리, 자막 재능기부 요구 논란에 “진심으로 죄송”
- 원더걸스 유빈, 9세 연하 '테니스 간판' 권순우와 열애
- “160만원→30만원에 난리” 역대급 가격, 삼성 제품에 무슨일이
- '현대家 며느리' 노현정, 18년 전 모습 깜짝 소환 눈길
- “음악 왜 돈 주고 들어요?” ‘공짜’에 하루 200만명이나 몰렸다
- 송혜교, 절친들과 홈파티…편안한 차림에도 놀라운 비주얼 '자랑'
- 이름도 생소한 ‘이 음식’…식당도 아닌 병원에서 왜 나와?
- ‘축구영웅’ 김민재, 나폴리 백반집 방문…“아내가 백종원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