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 나도 공천 가능해진 민주당 [쓴소리 곧은 소리]
1심 유죄받은 조국도 출마 가능…낯가죽 두껍고 속마음 시꺼먼 ‘후흑’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청나라의 기인 이종오(李宗吾)가 저술한 《후흑학》이라는 책이 있다. 얼굴이 두꺼울 후(厚), 속마음이 시꺼멓다는 흑(黑)을 조합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뻔뻔함과 음흉함을 바탕으로 하는 처세술'이 담긴 이 책을 읽다 보면, 요즘 우리 정치가 오버랩돼 얼굴이 화끈거린다. 황당한 셀프 공천룰 변경과 꼼수 탈당, 적반하장과 내로남불…. 한국 정치를 35년간 지켜봤지만,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여야 큰 차이는 없지만 도덕성 깃발을 추켜들었던 민주당의 행태는 더더욱 놀랍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당대표가 기소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헌을 개정한 데 이어 최근 내년 총선의 공천룰을 확정하면서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 중이라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당헌 80조 1항을 개정했다. 이로써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심이나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1인 방탄 공천룰' '셀프 공천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울러 1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전 장관도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도덕성 장치 제거하고 어떻게 표 달라 하겠나
이재명 대표 개인적으로는 당내 안전정치를 구축해 놓았을지 모르겠지만, 후유증과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상대적 우월성을 주장했던 '도덕성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허물어뜨려 놓고 선거에서 어떻게 표를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는가. 지도부가 당의 도덕성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제거해 놓고 공천 과정에서 당의 영(令)이 먹힐 수 있을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후흑학》의 저자 이종오는 속마음이 시커먼 조조를 그나마 높이 평가했는데 그 이유로 신상필벌의 용인술을 꼽았다. 조조는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는 반드시 엄한 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신상필벌을 단행할 것인가?
최근 100억원대 '코인 논란'으로 민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뒤늦게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두고도 삼각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우선 이재명 대표가 7인회 핵심이자 자신의 최측근인 김 의원에 대해 무한(無限) 온정주의를 보이는 바람에 국회 윤리위 제소가 차일피일 늦어져 사태를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비판론과 함께 '이재명 책임론'까지 확산되고 있다.
돈봉투 사건에 이어 당의 도덕성을 밑바닥까지 추락시킨 김 의원이 탈당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와 발언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그는 잘못한 게 없지만 소나기가 퍼부으니 민주당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겠다는 투로 말했다. 이 발언이 공분을 샀던 이유는 최근 민주당에서 위장 탈당, 기획 탈당, 꼼수 탈당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검수완박법 처리를 위해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은 1년 만에 당당하게 복당했다. 2021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던 당내 12명의 의원은 당시 송영길 대표로부터 탈당 권고를 받았으나 지역구 의원 5명은 거부하고 나머지 5명은 유야무야됐다. 이 외에도 김홍걸·윤미향·양이원영 등 국민의 지탄을 받아 탈당→출당→복당 패턴을 밟은 의원이 한둘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른바 친명 강경파 의원들의 안하무인격 태도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않느냐." 민심과 한참 동떨어진 이들의 강성 발언으로 인해 당 안팎에서는 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퇴진론이 다시 비등하고 있다. 이들은 개딸 등 일부 묻지마 팬덤의 박수를 받을진 몰라도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간 내년 총선에서 최대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예측하기 힘든 행동으로 공포감 심기?
이런 와중에 갈수록 정치적 행보가 빨라지고 있는 사람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이다. 문 전 대통령은 평산서점을 거점으로 '책방정치'를 확대해 가면서, 광주 5·18 행사에 1년 만에 수염을 깎고 참석했다고 홍보했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북콘서트에 딸 조민씨를 데리고 다니며 내년 총선 출마설에 불을 지피고 있다. 조민씨의 유튜브는 개설한 지 하루 만에 구독자가 6만 명에 육박했다. 만약 문재인-조국 콤비가 정치 전면에 나설 경우 당내에서는 친명과 비명 간 갈등, 당외에서는 국론 분열와 양극단 정치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게 뻔하다. 그래서 조응천 의원 같은 민주당 소신파들은 "민주당이 조국의 강을 아직도 못 건너고 헤매고 있는데 지금 강으로 풍덩 빠지자는 이야기"라며 우려한다. 내년 총선에서 참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무모할 정도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분노의 정치에 휩싸여 사태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다분히 '전략적이고 의도된 강수(强手)'라고 파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지금처럼 극도의 양극단 정치로 몰고 가면 내년 총선 때 진보진영은 더욱 똘똘 뭉쳐 민주당을 지지하고, 보수진영은 어차피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문제는 중도층. 윤석열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히면 오갈 데 없는 중도층은 결국 민주당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셈법일 것이다.
민주당이 설마 현대판 후흑학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을 활용하려고 하는 것일까. "대담하게 행동하면 실제보다 더 커 보이고 힘이 있어 보인다. 뱀처럼 빠르고 신속하게 행동하면 더 큰 두려움을 자아낸다. 한번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하면 그것으로 선례가 수립된다. 그다음부터 사람들은 당신의 행동을 두려워하여 수세적으로 나올 것이다."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균형을 잃게 되고 그것을 해석하려다 지치게 된다. 이걸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공포를 느낄 것이다!" 꼭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후흑학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제1 단계는 낯가죽이 두껍고 속마음이 시꺼먼 초급 단계다. 제2 단계는 상대가 어떤 공격을 퍼붓더라도 미동도 하지 않는 중급 단계다. 제3 단계는 낯가죽이 두껍고 속이 시꺼먼데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최악의 고급 단계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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