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억' vs '5338억', 中에도 뒤처진 韓 AI 신약개발… 돌파구는?
'AI 주도 신약개발, 제약바이오 혁신의 새로운 시대' 주제
중국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기업 크리스탈파이(XtalPi)는 201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5338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문인력 700명을 포함한 전체 직원은 1000명 이상이다. 2015년 비슷한 시기 설립된 한국의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 스탠다임은 878억원을 투자받았다. 전문인력은 54명에 불과하다.
AI가 주도하는 신약 개발이 전 세계적 트렌드지만 우리나라의 관련 생태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AI 신약 개발 수준을 높이기 위해 '연합학습'을 이용한 데이터 활용 방안을 마련하고 제약사와 AI 개발사 상호 간 이해를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AI 주도 신약개발, 제약바이오 혁신의 새로운 시대'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연자로 나선 김우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센터장은 AI 신약 개발의 글로벌 동향을 먼저 소개했다. 2016년 이른바 '알파고 모먼트'를 기점으로 AI를 이용한 신약 개발 시도가 늘었다. 201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6년간 누적된 파트너십 체결 건수는 232건이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가 27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AI 신약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 29개 AI 신약 개발 기업은 2016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약 6000억원 투자를 유지했다. 이들 기업의 시가 총액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15개 기업이 총 105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임상 단계까지 진입한 파이프라인은 8개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17~2018년 들어 투자가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1년간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며 "화이자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하면 연구·개발(R&D) 인력 구성이 적은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화이자는 2019년 '디지털 혁신 센터'를 내부에 설립해 200개 이상의 첨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중 다수가 AI 신약 개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이 프로젝트에 420명을 고용했다. 올해는 5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 AI 신약 개발이 지난 5년간 빠르게 성장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AI에 필수인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우리나라 공공데이터는 모수가 적은 데다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개별 기업이 보유한 민간데이터도 많지 않고, 기밀 유출을 이유로 잘 공개하지 않는다. 병원의 의료데이터는 개인정보 문제로 접근하는 게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연합학습' 기반 데이터 공유 체계 구축이 제시된다. 연합학습이란 개별 기업의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여러 기관이 서로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국내에서 'K-MELLODDY'라는 이름으로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유럽의 'EU-MELLODDY'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했다.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바이엘 등 유럽 소재 10개 제약사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개별 AI 모델보다 신약 개발 정확도를 2~4% 향상시켰다고 평가된다.
제약사의 신약 개발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AI 개발자와 AI를 이해하는 제약사 관계자가 적다는 문제도 있다.
한태동 동아ST 상무는 "제약사가 AI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AI 회사도 신약 개발을 이해하지 못한다. AI 회사에서 황당한 단백질 구조를 던져주는 것도 많이 봤다"며 "서로 공부가 필요한 시기다. 앞으로 3~5년간 제약사와 AI 회사가 서로 이해하면서 협력해야 하는 시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R&D 비용과 투자 문제도 지적됐다. 우리나라 AI 신약 개발사는 대부분 비상장사이다. AI 기술력 자체만으로는 상장 심사를 통과하기 힘들다. AI 기술을 발전시킬 투자 자금을 유치하기도 어렵다.
제약사는 R&D 비용이 없다. 한 상무는 "현재 국내 제약사의 현실은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며 "국내 10대 제약사 평균 R&D 비용이 1000억원인데 여기서 인건비 40% 빼고, 제네릭 임상 빼면 순수한 신약 개발 비용은 500억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동아ST가 지난달 500억원 무보증 사채를 발행했다. 우리도 R&D 비용이 1000억원이지만, 임상 3상 끝난 바이오시밀러 허가 신청 비용만 260억원이 든다"며 "지금 파이프라인이 20개가 넘어가는데 사채를 안 쓰면 이 과제들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했다.
단기적으로 차근차근 AI 신약 개발 성과를 쌓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 센터장은 "단계별 협업 성공 사례가 더 많이 도출돼야 한다. 전임상, 임상 등 단계별로 제약사와 AI 기업을 매칭시켜 단기간 성공 사례를 축적해야 한다"며 "누적된 성공 경험에 더해 인력 양성과 기술 고도화, 데이터 활용까지 더해지면 우리나라가 퀀텀 점프로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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