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 개미 걸음걸이 모방한 거미… “포식자를 속여라”

최정석 기자 2023. 5. 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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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증 베이징대 생명과학대학원 교수팀 논문
개미 걸음걸이 따라하고 풀잎 색 모방하는 거미
개미를 모방하는 거미 '실러 콜링우디(Siler Collingwoodi). 개미가 움직이는 방식을 모방하는 것에 더해 위장색까지 사용하며 포식자들 눈을 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Hua Zeng
실러 콜링우디 거미가 빨간색 꽃잎 위를 이동하고있다./Yuchang Chen

동물이나 곤충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다양한 위장술을 사용한다.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맞춰 몸 색깔을 바꾸고 대벌레는 길고 얇은 몸을 이용해 나뭇가지인 척 한다. 그런데 단순히 몸 색깔이나 형태를 모방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곤충의 걸음걸이까지 모방하며 스스로를 숨기는 곤충도 있다.

중국 베이징대 생명과학대학원의 웨이 장(Wei Zhang) 교수와 화 증(Hua Zeng) 박사 연구진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깡충거미의 불완전한 개미 모방이 생태계 적응에 기여한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깡충거미 속(屬)에 속하는 ‘실러 콜링우디(Siler Collingwoodi)’ 거미가 상위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두 가지 위장술을 사용한다는 데 주목했다. 하나는 개미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몸 색깔을 이용해 주변 풀잎에 섞여 포식자의 눈을 속이는 방식이다.

실러 콜링우디 거미가 두 가지 위장술을 함께 사용한다는 건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다만 실러 콜링우디 거미가 여러 개미 중 어떤 개미의 걸음걸이를 모방하고 있는지, 또 몸 색깔을 이용하는 위장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검증된 적 없었다. 연구진은 이 두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계획했다.

우선 연구진은 실러 콜링우디 거미가 어떤 개미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다. 아울러 다른 평범한 거미와는 걸음걸이가 어떻게 다른지도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암흰깡충거미, 밑드리개미, 납작자루개미, 가시개미 등 거미 1종, 개미 5종과 실러 콜링우디 거미를 함께 놓고 이들 걸음걸이를 비교했다.

실러 콜링우디 거미(연두색) 걸음걸이를 다른 거미, 개미와 비교한 결과. A는 실러 콜링우디 거미와 개미가 이동 중에 가다 서다(Stop-and-Go)를 하는 점이 비슷하다는 걸 보여준다. B는 실러 콜링우디 거미와 개미가 이동 방향을 비롯한 전반적인 패턴에서도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iSciencve

실험 결과 실러 콜링우디 거미의 걸음걸이는 같은 깡충거미속인 암흰깡충거미보다 개미들 쪽에 훨씬 가까웠다. 이동 중에 가다 서다(Stop-and-Go)를 반복하는 것부터 다리를 움직이는 방식까지 개미와 유사했다.

실러 콜링우디 거미가 특정 개미종 하나의 걸음걸이를 100% 똑같이 따라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양한 개미들과 전반적으로 비슷한 걸음걸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 점이 자연에서 포식자들의 눈을 속이는 효과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논문 제목에 ‘불완전한 개미 모방’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그렇다면 다른 많은 곤충들 중 왜 하필 개미를 따라하는 걸까. 연구진은 여러 마리가 힘을 합쳐 자신보다 훨씬 큰 포식자를 사냥하는 개미의 행동 방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미는 무리 생활을 하고 페로몬을 통해 동료 개미들과 위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포식자가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 있다. 포식자들이 이 점을 알고 개미를 잘 공격하지 않는 점을 실러 콜링우디 거미가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어 연구진은 실러 콜링우디 거미의 위장 기술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실러 콜링우디 거미 몸에 빨간색과 초록색이 섞여있는 것을 고려해 빨간 꽃이 피는 익소라 속 식물과 녹색 풀잎을 지닌 푸젠 차나무를 한 곳에 섞어 심었다. 여기에 실러 콜링우디 거미 3종과 함께 걸음걸이 비교에 이용했던 거미 1종과 개미 5종을 똑같이 집어넣었다. 위장 걸음걸이와 위장색이 모두 효과를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식자로는 ‘거미 잡는 거미’라 불리는 포시아 라비아타 거미와 사마귀를 이용했다.

연구진은 포식자들이 어떤 곤충을 공격하는지 보기 위해 포식자마다 17번씩 실험을 진행했다. 포시아 라비아타 거미는 단 한 번도 실러 콜링우디 거미를 공격하지 않았다. 포시아 라비아타 거미는 17번 중 5번 공격했는데 모두 암흰깡충거미가 대상이었다. 실러 콜링우디 거미와 개미는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다. 실러 콜링우디 거미의 위장이 같은 거미종을 상대로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뜻이다.

반면 사마귀는 거미와 개미를 가리지 않고 17번 중 15번이나 공격에 나섰다. 논문 교신저자인 웨이 장 교수는 “처음에는 포시아 라비아타 거미와 사마귀 모두 비슷한 공격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실험 결과 실러 콜링우디 거미의 위장 기술은 같은 거미종 이외에 다른 포식자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참고자료

iScience, DOI: https://doi.org/10.1016/j.isci.2023.106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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