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人워치]골드러시 때 돈 번 사람은 누굴까?
'80조' 세포유전자치료제 특화 CRO 표방
차바이오그룹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 강점
"임상업계도 삼바·셀트 같은 기업 나올것"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시대에 정작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를 판 사람이었습니다. 금광을 찾는다면 단번에 천금을 움켜쥘 수 있지만, 금광은 찾지 못할 확률이 훨씬 높거든요. 우리도 리스크가 높은 신약 개발에 뛰어들기보다는 기업의 신약 개발 과정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이대희 서울CRO 대표는 10일 강남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임상시험수탁기관)는 제약바이오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아 신약 개발 과정의 일부를 대신 수행하는 곳이다. 임상시험의 설계, 컨설팅, 데이터 관리 및 통계분석, 인허가 업무를 대행한다.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CRO에 임상시험을 맡겨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전 세계적으로 백신·치료제 개발 경쟁에 불이 붙으며 CRO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서울CRO는 임상시험 전(全) 과정을 위탁할 수 있는 전문 CRO다. 지난 2009년 차병원·바이오그룹의 차바이오앤디오스텍(현 차바이오텍), 일본의 도쿄CRO, 의약품·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팅 기업 메디헬프라인이 합착해 설립했다. 지난해 말 기준 차바이오텍이 최대주주로 지분 99.28%를 보유했다. 최근 3년간 연간 매출은 △2020년 57억원 △2021년 48억원 △2022년 63억원으로 매년 50억~60억원대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2월 합류했다. 서울대 의대 졸업 후 한독, 한국 얀센, 한국BMS제약, 한국 베링거인겔하임, 동화약품 등 국내외 제약사를 거친 의학 분야 전문가다. 이날 이 대표는 "CRO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서울CRO는 차바이오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인프라, 세포유전자치료제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향후 2~3년 동안 성장을 가속화하고 5~6년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서울, 세계 1위 임상인데 국내 CRO는 고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은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도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서울은 2017년 도시별 임상시험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별 임상시험 등록건수로 보면 지난해 한국은 5위를 차지, 역대 최고 순위를 달성했다. 전년(6위)보다 한 단계 올라선 수치다.
그러나 국내 CRO 업계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 CRO 시장을 해외 CRO가 과점하고 있어서다. 국내 CRO 시장은 매년 커지는 추세지만 국내 기업 점유율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국내 CRO 가운데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로부터 임상시험을 직접 수주받는 곳은 거의 없다"면서 "국내 기업은 인력이나 인프라, 데이터베이스 측면에서 임상을 해외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수행하는 역량이 부족한 편"이라고 했다.
CRO 산업이 취약하면 제약산업도 영향을 받는다. 국내 CRO가 중요한 신약개발 경험에서 계속 배제될 경우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연구개발(R&D) 노하우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어서다. 그는 "임상시험 1위 도시를 보유한 나라에서 국내 CRO가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국내 CRO들이 동반 성장할 때 제약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국내 CRO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CRO가 주요 국가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해외 CRO와 경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CRO가 베트남, 대만 등에 진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면서 "국내 CRO의 글로벌 진출을 논한다면 의약품 시장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국에서 임상시험 수행 능력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차바이오그룹 시너지 극대화…목표는 '글로벌'
서울CRO는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판단이다. 자신감의 배경은 차병원·바이오그룹이 보유한 전세계 네트워크와 인프라다. 현재 미국 LA 민간 최대 종합병원인 '할리우드 차병원', 호주 서부 최대 난임센터 'FSWA', 동남아시아 최대 병원그룹 'SMG' 등이 차병원·바이오그룹에 속해있다.
이 대표는 "CRO를 통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수많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 같은 신뢰 문제로 힘들어한다"면서 "서울CRO는 할리우드 차병원과 같이 직접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한 병원이 많아 투명성 등 관점에서 고객사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포유전자치료제 분야에 특화한 임상시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도 강점으로 내세웠다. 세포 치료제는 살아 있는 세포를 체외에서 증식하거나 선별하는 등의 방법으로 세포의 생물학적 특성을 바꾼 의약품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물질을 포함하거나 유전물질을 변형·도입한 세포를 넣은 의약품이다. 이들 치료제는 암이나 퇴행성 질환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오는 2026년 556억달러(약 8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울CRO는 세포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임상시험 전문 인력이나 자금이 부족한 벤처는 임상 개발 전략이나 연구 디자인을 짜는 등 한층 폭넓은 분야에서 CRO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세포유전자치료제는 기존 합성의약품이나 항체의약품보다 의약품 생산 기법, 공급망, 질환에 대한 이해, 데이터 분석 등에서 한층 높은 기술력과 전문성을 요구한다"며 "분당차병원 글로벌 줄기세포 임상시험 센터나 그룹 내 계열사와 긴밀하게 협업해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바이오벤처에 밀착 컨설팅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서울CRO를 고객 중심 기업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20년가량 제약사에서 근무하며 CRO가 수수료만 받고 임상시험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많다"면서 "CRO 입장에서 고객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이 글로벌 위탁생산(CMO) 톱티어 기업으로 우뚝 선 것처럼 국내 CRO 중에서도 충분히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서울CRO도 강점을 살려 글로벌 CRO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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