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축구 한 잔] 솔직히 부산이 A매치 개최할 만한 도시입니까?
(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 잔
6월 A매치와 관련해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경기 장소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오는 6월 16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페루를, 6월 20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엘살바도르와 대결한다. 이미 몇 차례 성공적으로 A매치를 개최한 대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부산광역시에서 페루전이 열린다는 건 꽤 이색적인 결정처럼 보였다. 지척에 울산 문수경기장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2030년 세계박람회(EXPO) 유치를 위해 달리고 있는 부산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세계적 행사를 잘 열어보겠다는 부산시의 노력을 윤석열 대통령까지 전폭 지원하고 있는 국가적 사안인 만큼, 대한축구협회도 옆에서 거들겠다는 취지는 십분 공감한다.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왜 부산시에서 A매치가 열리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
많은 도시에서 A매치 혹은 연령별 국가대항전이 열려왔지만, 부산시만큼 매머드 축구 경기 개최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느껴지는 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오해할까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부산 팬들은 A매치를 즐기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도리어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시에서 이런 큰 이벤트가 더욱 자주 열려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부산은 스포츠적 명분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축구적 측면에서, 나아가 스포츠적 측면에서 부산시가 과연 얼마나 기여를 해왔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명분도 없고, 심지어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다.
종종 이름 높으신 부산 분들이 스포츠적 관점에서 부산시를 소개할 때 '구도(球都) 부산'이니 '2002 FIFA 한일 월드컵 첫 승의 성지'라는 표현을 하는데, 현 시점에서 이런 얘기가 그저 공허하게만 느끼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비단 부산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친다. 그리고 그렇게 느낄 만하다.
짚어보겠다. 프로스포츠 관점에서 볼 때, 부산시만큼 구단과 협조가 되지 않는 지자체는 없다. 축구를 포함한 프로 구기스포츠를 아울러 생각해보자. 다른 건 둘째 치고 부산을 떠나려하거나 실제로 떠나버린 케이스가 타 대도시와 비교해 너무 많다.
기억 하는 것만 2003년 기아 엔터프라이즈(연고 이전 후 울산 모비스/농구), 2004년 부산 아이파크(연고 이전 시도), 2021년 KT 소닉붐(수원 KT 소니붐/농구) 세 차례다. 다른 도시는 감사한 마음으로 유치하는 기업 구단임에도, 부산시는 그저 관내에서 영업하는 회사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문제는 영업이라도 잘할 수 있도록 해야할 터인데 그마저도 안 된다. 다른 나라라면 자리잡고 싶어 안달이 날 '제2의 도시', 330만 대도시인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타 종목 사정은 잘 알지 못하니, 이제 K리그 부산에만 집중해보겠다. 부산에서 들려오는 여러 소식을 접하면, 부산이 부산시에서 프로 스포츠 사업을 하려는 의지가 애처로워 보일 정도다. 좀 거칠게 말하면, 그 푸대접을 받고 연고이전하지 않는 게 용하다.
지난해 이미 대형 콘서트 때문에 안방을 내줘야 했던 부산은 올해도 안방을 내줘야 한다. 5월 27일 드림 콘서트가 여기서 예정되어 있다. 붐 조성을 이유로 차후 또 콘서트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혹시 해서 강조하지만, 부산은 부산시에 정해진 구장 임대료를 내고 있는 '고객'이다.
이때문에 부산은 작년 마지막 홈 경기는 프로 경기가 열려서는 안 될 보조구장에서 어렵사리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번 드림 콘서트 때문에 부산 구덕운동장으로 또 둥지를 옮긴다.
그런가 하면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야구장 리모델링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구장을 현재 안방으로 쓰고 있는 부산이 쓸 대체 구장에 대해서는 구체화된 적이 없다. 박형준 부산시장 취임 후 전용구장 건립 관련 얘기가 나왔으나, 지금까지는 '공수표'일 뿐이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을 부산 축구팬들은 그럼 그렇지라는 자조만 내뱉을 뿐이다.
비단 경기장 문제뿐만이 아니다. 부산의 클럽하우스 20년 기부 체납 기간이 현재 끝난 상태다. 그러니까 부산 프런트와 선수들은 부산시에 현재 임대료를 내고 자신들이 직접 삽을 떠서 완공했던 클럽하우스를 쓰고 있다.
법규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는 특별 조례 등 여러 방법으로 프로스포츠단의 연고 정착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냥 핑계다. 프로스포츠 육성 지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손 놓고 있을 지자체는 없다. 방법이 없다면 머리를 맞대어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부산시는 그런 의지를 보여준 적이 없다.
잔디 지붕 문제가 어제오늘 일? 하다 못해 벤치도
A매치는 어떠할까? 부산시는 한동안 A매치를 개최하지 못했던 도시였다. 2004년 한국-독일전 이후 15년 동안 A매치는커녕 연령별 대표 경기도 열지 못하다 2019년 한국-호주전, 그해 겨울 개최됐던 EAFF E-1 풋볼 챔피언십을 통해 흑역사를 겨우 끝냈다. 서울 다음 가는 인구 덕에 예상되는 축구팬층이 그토록 큰 부산을 왜 외면했을까? 당시에는 부산시축구협회와 대한축구협회의 불편한 관계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다.
2018년에 칠레전을 유치했다가 지금처럼 잔디 문제 때문에 개최 기회가 박탈된 적이 있다. 페루전을 앞두고 문제가 되고 있는 지붕 문제는 어떠한가? 태풍이 직격되는 코스에 놓인 부산의 지리적 여건상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은 개장 이후 지붕이 날아간 적이 비일비재였다. 지붕이 뻥 뚫린 채로 수년 간 방치되어 K리그를 치렀고, E-1 풋볼 챔피언십, 그리고 2019년 한국-호주전 등 국제대회까지 치렀다. 비용이 정말 많이 들어가는 일이긴 하나,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지붕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언론에서 언급된 잔디나 지붕만 문제일까? 나머지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하다 못해 벤치만 해도 그렇다. 부산에서는 월드컵 때 마련되어 20년도 더 된 그 딱딱한 벤치를 쓸 때, 국내 타 구장에서는 유럽 선진국에서 이미 대중화된 푹신한 벤치를 설치해 선수들의 컨디션 유지에 보탬이 되고 있었다. 굳이 유럽까지 생각할 필요 없이 주변 구장에서 어떻게 경기장 관리를 했는지 참고하고 반영했다면 이런 얘기가 나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부산의 이번 6월 A매치 유치를 통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참에 손을 보면서 시설이 조금이나마 개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축구는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고, 언젠가 부산에서 또 이런 큰 경기가 열려야 할 상황이 또 올 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이런 땜질로 넘어가는 구태를 반복해야할지 부산시에 묻고 싶다. 만약 4년 뒤에 FIFA 월드컵을 한국에서 연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상태라면 부산은 절대 경기 개최 후보 도시에 이름을 올릴 수준이 아니다. 프로스포츠 구단 푸대접, 있는 시설 관리 및 투자 미비 등 앞서 언급한 이유가 전부일까? 더 길어지면 지루해질 듯하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일뿐이다. 현 상태는 '황폐화된 구도'일 뿐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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