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팔 잃은 환자, ‘사라진 손’으로 온기 다시 느끼다
사라진 손에서 온도 느꼈다고 답해
같은 방법으로 의수도 물체 온도 감지
환자 일상 복원 돕고 감정도 전달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이 다시 손으로 커피잔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온도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정보일 뿐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연구가 발전하면 장애인이 로봇 의수(義手)를 실제 팔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EPFL)의 실베스트로 미케라(Silvestro Micera) 교수와 솔라이만 쇼쿠르 박사 연구진은 1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팔 아래가 절단된 환자가 온도 센서와 전극의 도움을 받아 예전처럼 손으로 사물의 온도를 감지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이탈리아 산타나 공대(SSSA)와 산재보험공단(INAIL) 연구자들도 참여했다.
◇환상지로 온도 감각 복원해
사고나 질병으로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는 사라진 손에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환상지 통증(phantom limb pain)’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환상지 통증을 경험한 환자 27명을 대상으로 남은 팔에 전극을 붙이고 각각 섭씨 25도와 32도, 37도의 온도를 전달했다. 환자들은 환상지로 온도를 느꼈는지, 또 각각의 온도를 다르게 감지했는지 답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17명이 환상지에서 온도 변화를 감지했다고 답했다. 15명은 3가지 온도 차도 구분했다. 쇼쿠르 박사는 “절단 수술 후 신경이 피부에서 계속 자랐다고 추정된다”며 “이 신경을 자극해 환상지 감각을 유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 중 왜 17명만 온도를 감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남은 팔의 피부에 신경이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추정했다. 쇼쿠르 박사는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 사람 중에는 화재 사고를 겪은 경우가 많았다”며 “피부에 화상을 입어 감각 능력을 대부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로봇 의수로 커피잔 온도 느낄 수 있어
연구진은 환상지 온도 감각이 일상에 도움을 줄지 알아보기 위해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유리와 구리, 플라스틱에 온도 센서를 부착했다. 연구진은 환상지 온도 감각을 경험한 환자 9명에게 눈을 가리고 센서가 감지한 온도를 남은 팔에 전극으로 전달했다. 금속은 플라스틱보다 열이 더 잘 전달돼 온도가 더 빨리 오르거나 냉각된다. 손은 이런 온도 차이를 통해 어떤 물질을 만졌는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전극 온도를 피부의 대략적인 온도인 32도로 설정한 다음, 사람 피부가 구리, 유리, 플라스틱에 닿았을 때 느끼는 온도만큼 낮췄다. 실험에서 환자들은 66%의 성공률로 센서가 어떤 물질에 닿았는지 식별했다. 온전한 손으로 물질을 만졌을 때는 67%의 성공률을 보여 차이가 나지 않았다.
미케라 교수와 쇼쿠르 박사는 앞서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 온도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가상현실(VR)에서 상황에 맞는 온도를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가상현실에서 모닥불에 가까이 가면 따뜻한 느낌을 받는 식이다. 스위스 연구진은 같은 기술을 팔 절단 환자가 쓰는 의수에 적용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미니터치(MiniTouch) 시스템은 의수의 손가락에 붙일 수 있는 센서와 남은 팔에 붙여 온도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전극으로 구성된다. 센서는 물체의 열 전도도를 감지한다. 전극은 센서가 감지한 정보에 따라 환자의 남은 피부에 열감을 전달한다. 환자가 의수로 뜨거운 커피잔을 잡으면 따뜻해지고, 얼음물이 든 잔을 잡으면 차가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온도를 감지할 수 있으면 의수를 좀 더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같은 방법으로 감정도 전달할 수 있다. 한 실험 참가자는 미니터치 기술로 아이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환자에게 수술로 잃어버린 감정까지 복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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