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향기가 '잠깐' 고척에… 괴물에게 집중을 시켜봤더니 이랬습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KBO리그 최고의 투수로 활약했던 류현진(36‧토론토)이었지만, 그를 상대해 본 타자들은 정작 1회부터 9회까지 모두 최고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했다. 뜬금없이 안타를 맞을 때도 있었고, 주자를 내보낼 때도 있었다.
류현진의 진가는 위기에서 발휘됐다는 게 많은 이들의 기억이다. 안치용 ‘스포타임 베이스볼’ 위원은 “평소에는 설렁설렁 던지다가 위기가 되면 얼굴이 바뀌며 전력투구를 했다. 그때가 류현진의 진짜”라고 했다. 그래서 오히려 기회가 되면 류현진은 더 두려운 투수였다. 점수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생긴 류현진의 투구는 주자가 없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류현진은 KBO리그 타자들에게 ‘공포’가 됐다.
어쩌면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는 그런 류현진의 향기가 잠깐 피어오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두산은 이날 키움 에이스 안우진(24)을 맞이해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1회 선취점을 뽑았고, 2회까지는 많은 공을 던지게 하며 안우진을 생각보다 더 빨리 강판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줬다. 1-3으로 뒤진 5회에도 안우진을 몰아붙였다.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선두 장승현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갔고, 이유찬이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2루타를 쳐 무사 2,3루를 만들었다. 이어 정수빈까지 적시타를 치며 안우진을 상대로 연속 3안타를 만들어냈다. 2-3 1점 추격에 여전히 무사 1,2루 기회. 그리고 기회는 중심타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안우진을 몰아낼 수 있는 마지막 찬스가 왔다. 그렇다면 경기 후반은 두산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안우진은 안우진이었다. 크게 쉼호흡을 하고 다시 타자들을 노려본 안우진은 또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박계범을 변화구 세 개로 3구 삼진 처리했다. 초구에 슬라이더, 3구째 커브를 스트라이크존으로 넣었다.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제구력을 과시했다.
이어 가장 어려운 산이었던 양의지를 역시 3구 삼진으로 정리했다. 초구 커브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한 뒤 2구째 패스트볼로 파울을 만들었다. 마치 병살을 유도하려는 듯 3구째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양의지의 방망이가 헛돌며 삼진이 됐다. 키움으로서는 이날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였다. 경기장 분위기가 안우진과 키움 쪽으로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다음 타자 양석환이 느꼈을 부담감이야 실감할 수 있다. 투아웃을 잡은 안우진은 양석환 또한 헛스윙 3구 삼진으로 처리하며 역전은 허용하지 않은 채 불을 껐다. 2S를 잡은 상황에서 양석환의 방망이를 누르는 패스트볼 승부는 일품이었다. 안우진은 그렇게 승리 요건을 지켰고, 키움은 8회 4점을 추가하며 7-3으로 이겼다. 안우진의 시즌 3번째 승리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안우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투수다. 시즌 9경기에서 57⅓이닝을 던지며 3승2패 평균자책점 1.73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57⅓이닝에서 잡아낸 삼진만 73개다. 타자의 인플레이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위기 상황에서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안우진의 올해 무주자시 피안타율은 0.230으로 자신의 평균()보다 높다. 그러나 주자가 있을 때는 피안타율이 0.141로 뚝 떨어진다. 득점권 피안타율은 0.128로 더 떨어진다. 안우진은 올 시즌 아직 주자가 있을 때 홈런을 맞은 적이 없다. 위기에 몰리면 더 강한 공을 던지며 상대 타선을 윽박지르는 셈이다. 이는 타자들로 하여금 “안우진은 위기에서 더 강하고,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공포의 이미지를 새길 수 있다.
안우진은 강한 공을 오래 던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스태미너를 가지고 있다. 이 능력 하나는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터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1회 첫 타자부터 경기 마지막 타자까지 모두에게 100% 전력투구를 하는 건 어렵다. 그러면 빨리 지치게 되어 있다. 안우진의 완급조절은 그래서 의미를 갖는다. 그 완급조절이 더 노련해지고 있다는 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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