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KGB, 마피아는 어떻게 러시아를 접수했나
공산 정권 붕괴하자 민주주의, 친시장주의자로 변신
부시장 시절부터 KGB, 마피아와 손 잡고 검은 거래
폭발사건 강경 대응으로 무명에서 영웅으로 떠올라
인기 위한 자작 사건 의심에도 1년만에 대통령 당선
언론, 신흥재벌 등 정적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재산 몰수
검찰총장 스쿠라토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내기 위해 그와 가족의 뒤를 캐고 있었다. 옐친의 측근인 푸가체프는 수사를 막기 위해 스쿠라토프의 섹스 비디오를 입수했다. 그러나 비디오 공개 여부를 놓고 다들 머뭇거렸다. 그 때 막 FSB(정보기관 KGB의 후신) 수장인 된 푸틴이 나섰다. 푸틴은 스크라토프의 비디오를 방송국에 넘겨 전국민이 보도록 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푸가체프가 무명에 가까웠던 푸틴을 대통령으로 밀기로 마음 먹은 순간이다.
당시 푸틴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충성심이 높으며 순종적으로 보였다. 옐친은 푸틴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푸틴은 대통령에 오른 후 뼛속까지 각인된 전체주의 본성을 드러내고 철권정치를 펼쳤다. KGB를 중심으로 한 푸틴의 이너 서클 ‘실로비키’와 신흥재벌 ‘올리가르히’, 마피아는 그의 손과 발이 돼 정적들을 제거하고 러시아 정치와 경제, 사법시스템을 접수했다.
신간 ‘푸틴의 사람들’(원제: Putin's People)은 푸틴과 전직 KGB 멤버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조망한다. 6년간 러시아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수많은 증인과 내부자 인터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푸틴과 그의 친구들이 거리낌 없이 민간 기업을 빼앗고 부와 권력을 이용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며 서방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했다.
푸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비에트 비밀경찰인 NKVD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며 10세부터 KGB 해외첩보 요원을 꿈꿨다. 1985년 32세에 붉은 깃발학교에서 KGB 해외첩보 간부 훈련을 마치고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그는 서방에서 수출이 금지된 첨단 상품과 기술을 밀수하고 동독 정치계 2군과 3군으로 깊이 파고들 정치요원을 포섭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러시아로 급거 귀국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1990년 2월 구소련에 민주주의 물결이 일며 70년 공산당 통치의 종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푸틴은 재빠르게 노선을 바꿔 민주주의 운동의 스타로 떠오른 숍차크 레닌그라드 주립대학 총장의 보좌관으로 들어갔다.
솝 차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푸틴은 부시장이 됐다. 당시 소비에트 붕괴라는 혼돈을 틈타 범죄조직이 보호비 명목으로 지역 사업체를 갈취하고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솝차크는 푸틴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겼다. 푸틴은 KGB 동료, 범죄조직과 삼각 동맹을 맺고 석유, 희토류 등 원자재 사업에 막대한 이권을 안겨주고 ‘옵스차크’, 이른바 돈주머니를 따로 차기 시작했다.
1996년 솝차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재선에 실패했지만, 선거유세 책임자였던 푸틴은 정치 중심지 모스크바에 입성할 기회를 얻었다. 크렘린의 해외재산부 책임자가 되며 아찔한 상승을 시작한 그는 1년 뒤 대통령 다음 세번째로 강력한 지위의 크렘린 지역 담당 행정 제1부실장으로 승진하고, 3개월만에 FSB 수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겨우 중령 계급이었는데, FSB 수상에 장성급 아래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푸틴은 FSB 수장이 되자마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 경쟁자였던 솝차크의 전직 보좌관 유리 슈토프와 인권활동가 등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1999년 옐친의 건강이 악화되자 공산당 보수파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옐친이 미국의 앞잡이라며 제거할 궁리를 했다. 그 때 푸틴이 스쿠라토프 검찰총장의 섹스비디오를 터뜨려 수사를 막았다. 얼마 후 옐친은 푸틴을 신임 총리로 임명했고, 무명의 젊은 정치인이 총리가 되자 온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옐친 패밀리의 신뢰를 사기 위해 친시장적인 태도를 보였던 푸틴은 취임 후에도 자유주의적인 개혁안을 발표하고 가장 철저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를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세계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푸틴은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 노력하는 등 서방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듯 했다. 마침 운 좋게도 석유 가격이 급등해 경제가 안정되자 푸틴은 국민들에게 러시아를 구원한 차르로 추앙받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러시아 헌법을 개정해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가 종신제에 성공할지, 러시아가 새 리더를 선택할지 알 수 없다. 푸틴과 그의 사들이 되돌려버린 러시아의 시계가 제자리를 찾기 바랄 뿐이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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