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44%·60개국···숫자로 보는 현대차 '포니'
양산 고유 모델 개발한 '9번째' 국가
출시 첫 해 포니 시장 점유율 '44%'
포니 부품 국산화 비율 '90%'
포니 수출 국가 '60개국'
포니의 출시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이었다. 포니는 당시 걸음마 수준이던 국내 승용차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자동차를 대한민국 주력 수출 품목으로 성장시켰다. 동시에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현대자동차는 1973년 3월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을 경영 방침으로 결정했다. 이런 방침은 고유 모델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뿐만 아니라 차량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완성차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제조업 기반이 없는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자동차 개발 경험이 전무한 현대차(005380)가 고유 모델을 개발한다는 계획에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당시 많은 자동차 전문가들이 “현대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져라”며 비웃었다는 이야기는 이 계획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다. 현대차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포니 개발에 성공했고 울산에 완성차 공장을 준공하며 1975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이듬해 1월 26일부터 계약을 받기 시작한 포니는 2월 29일부터 고객에 출고됐다. 불과 3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포니가 고유 모델로 조명을 받은 것은 ‘대량 생산 체계’에서 개발되고 양산된 첫 ‘국산 고유 모델’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국 브랜드의 고유 모델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당시 한국은 기존 8개 자동차 공업국(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체코)에 이어 9번째 고유 모델 출시 국가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국가들은 고유 모델을 수출한 ‘글로벌 모델’ 생산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고유 모델은 브랜드가 수출에 대한 의사 결정을 자주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포니는 국내에서 개발돼 한국인의 체격과 도로 사정에 적합했고 조립 생산차보다 내구성이 좋으면서도 경제적인 것이 강점이었다. 포니는 국내에 출시되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 4618대였는데 포니 단일 모델이 그해 1만 726대가 판매되면서 4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 점유율의 67%(포니1, 2 합산 기준)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포니는 출시 첫해부터 포니1이 단종되는 1985년까지 약 10년간 대한민국 1위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대에 진입하면서 고도 경제 성장으로 구매력이 향상된 국내 소비자의 자가용 수요는 빠르게 증가했다. 포니는 국내 승용차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 ‘마이카’ 시대를 여는 핵심 주역이 됐다.
포니의 주요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부품 국산화율이다. 당시 조립방식으로 생산된 차는 자주 고장 났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품이 수입품이라 수리비가 비싸고 작업도 오래 걸렸다. 반면 포니는 부품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한 덕분에 수리가 빠르고 비용도 저렴했다. 또한 최신 시설에서 생산한 국산 부품을 통해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며 낮은 내구성으로 비판받던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포니 부품 국산화의 진정한 의의는 국내 부품 업체 발굴과 계열화를 통해 국내 자동차 공업 발전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포니는 당시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제작이 어렵거나 시장성이 낮은 일부 품목만 수입에 의존했고 90% 이상의 부품을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부품 업체를 통해 생산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포니 프로젝트 계획 단계부터 부품 국산화 관련 목표를 세우고 국내 부품 업체 현황을 조사, 발굴, 육성하는 데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전국 약 430개의 부품 업체를 발굴하고 계열화했다. 부품 업체는 포니 설계 도면에 따라 부품의 개발, 생산, 품질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러한 과정은 외국에서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신차 개발 프로젝트였다.
이후 포니2는 최대 98%의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이와 같은 부품 국산화 노력은 국내 자동차의 전후방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포니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차였다. 국내 첫 출고 시점보다 보름 정도 이른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시험 수출했다. 같은 해 7월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포니와 포니 픽업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1019대가 수출됐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7427대를 30개국에 수출했고 1978년에는 1만 8317대를 40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지역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으로 확대됐다. 현대차의 수출 성과에 고무된 정부는 1979년에 자동차 산업을 10대 수출전략산업으로 선정한다. 이후 1982년 7월에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했다. 당시 수출 대상국은 약 60개국에 달했다.
포니를 통해 해외 수출 시장의 길을 닦은 현대차는 1985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그해 세계 각지에 포니, 스텔라, 포니 엑셀, 프레스토 등의 다양한 모델을 수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이렇듯 포니는 글로벌 시장에 수출돼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달리는 국기(國旗)’ 역할을 해냈고 현대차가 이후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수출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됐다.
유창욱 기자 woog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 키워야 해서'…유흥업소 취직 전직 아이돌에 日 '발칵'
- 치매·중병 걸린 부모님 대신 보험금 받으려면…미리 '이것' 신청해야
- [단독] '삼성 두뇌'단 자율주행차, 수원에서 강릉까지 혼자 달렸다
- 마스크가 얼굴 팬티라던 日, 마스크 벗고 ‘미소 짓기 수업’ 듣는다
- '필로폰 투약 혐의' 남태현·서민재 구속심사 출석…'죄송합니다'
- '널 짝사랑, 원장한텐 비밀' 초등생 성추행한 60대 통학차 기사
- 17개월 아기 입 막고 발로 '퍽퍽'…구청 소속 돌보미의 두 얼굴
- '눈찢기' 조롱하며 키득키득…대놓고 인종차별 당한 韓여성
- 커피 한 잔 값으로 500만원 '샤넬백' 쓰세요…'명품 벽 낮춘다'
- '코스피, 올해 하반기 3000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