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이 기획한 ‘포니 쿠페’, 손자가 49년 만에 복원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양산은 못해

현대차는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와 스포츠카 포니 쿠페 콘셉트를 공개했다. 정주영 선대회장이 1973년말 이탈리아 토리노에 방문,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84)를 직접 찾아가 “현대를 위해 자동차를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해 탄생한 차다.

포니는 역사적인 성공을 기록한 반면, 포니 쿠페는 1979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기 침체 등 영향으로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공개 이후 약 49년 만에, 정주영 회장의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 차를 그대로 복원했다.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르제토 주지아로(오른쪽) 디자이너가 18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공개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 49년 만에 복원된 포니 쿠페… 정의선 “양산 못 할 것 없다”

현대자동차는 18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현대 리유니온’ 행사를 열고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최초로 공개했다.

포니 쿠페 콘셉트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작업은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포니 개발을 통해 자동차를 국가의 중추 수출 산업으로 육성해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염원했던 정주영 선대회장의 수출보국 정신과 포니 쿠페를 앞세워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고자 했던 당시 임직원들의 열정을 되짚고자 기획됐다. 당시 포니를 디자인한 주지아로 디자이너와 그의 아들인 파브리지오 주지아로가 복원 작업을 맡았다. 주지아로는 폭스바겐 골프와 제타 1세대를 비롯해 스텔라, 쏘나타 1·2세대 등 다수 현대차 초기 모델들도 디자인했다.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현대차 제공

이번에 복원된 포니 쿠페의 모습을 보면, 1974년의 사진과 디자인이 완전히 똑같아 보인다. 차체와 엔진도 콘셉트 당시로 재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길이 4080㎜, 폭 1560㎜, 높이 1210㎜다. 휠베이스(자동차의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는 2340㎜다. 1238㏄ 4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 출력은 82마력이다. 후륜구동으로 움직인다.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현대차 제공

현장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주영 선대회장은 1970년대 열악한 산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심지어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독자적인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포니 쿠페를 복원한 이유에 대해선 “현대차의 역사가 이제 50년 됐는데, 과거를 정리하고 알면서 다시 미래를 생각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내부적으로 많이 했다”면서 “그렇게 해야 방향성도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고, 예전에 이렇게 힘들게 같이 노력했던 그런 모든 것들을 살리자는 취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현대차 제공

정 회장은 포니 쿠페를 실제로 양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주지아로 디자이너는 꼭 양산을 했으면 하는데, 디자이너분들은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하시지만 따져봐야 될 게 많다”면서도 “당연히 고객분들이 많이 좋아하신다면 양산 못 할 건 없다”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공개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에 조르제토 주지아로(왼쪽) 디자이너와 정의선(오른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탑승해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현대차 제공

◇ 정주영의 ‘자동차 생산 100% 국산화’ 꿈

포니는 현대차의 첫 독자 모델이라는 상징을 갖는다. 우리나라 기계 공업이 발전하기 위해 자동차 생산이 100% 국산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주영 선대회장의 각별한 노력으로 포니가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포니의 주요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부품 국산화율로, 부품의 대부분을 국내 생산한 덕분에 수리가 빠르고 저렴했다. 국내 부품 업체 발굴과 계열화를 통해 국내 자동차 공업 발전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준다.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의 과거 모습. /현대차 제공

포니의 출시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이었다. 현대차가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포니와 포니 쿠페를 출시할 때 유럽 3대 일간지 ‘라스탐파’는 “한국이 자동차 공업국의 대열에 끼어들었다”며 대서특필했고, 유수 해외 자동차 전문지들이 현대차와 포니에 대한 특집 기사를 발행했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4618대였는데, 포니 단일 모델이 그해 1만726대가 판매되며 무려 4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이후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 점유율의 67%(포니1·포니2 합산 기준)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해 7월에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대를 돌파하는 등 해외 수출 시장의 길을 닦았다.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의 과거 모습. /현대차 제공

포니 쿠페 콘셉트는 쐐기 모양의 노즈와 원형 헤드램프, 종이접기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선으로 공개 당시 전 세계 주목을 받았으나, 1979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경영 환경 악화로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선진 시장 수출 전략 차종으로 양산 직전까지 개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85년 포니 엑셀 신차발표회에 참석해 포니 엑셀을 지켜보고 있다. /아산정주영닷컴

현대차는 “포니 쿠페 콘셉트에는 선진국 진출을 위해 스포츠카라는 분야에 도전한 현대차의 담대함과 혁신 정신이 담겨있다”면서 “현대차가 고성능 수소전기차 분야를 개척하고 전기차 시장에서 선도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데 큰 경험적 자산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현대차는 앞서 포니 쿠페 콘셉트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수소 스포츠카 ‘N 비전 74′를 공개했다. 전기차 아이오닉5 디자인은 포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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