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무리짓고, 반항… 인간과 꼭 닮은 ‘야생의 사춘기’[북리뷰]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 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쌤앤파커스
어린 해달, 바다로 무모한 돌진
수많은 실패 끝 ‘청년 해달’로
하이에나, 살벌한 공동체 적응
늑대, 굶주림 이기고 홀로서기
동물의 성장기는 곧 ‘생존기’
안전·지위·성·자립 기술 익혀
어른이 되기 위해 태어나서 가장 처음, 가장 크게 몸과 마음이 진동하는 시기. ‘사춘기’가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당연하다. 호랑이도 사자도 곰과 토끼도, 아주 짧은 생을 사는 초파리도, 400년을 사는 그린란드상어도,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완전한 ‘어른’ 생명체일 수는 없으니. 그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부 교수와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가 함께 쓴 책은 지구 위 모든 동물이 새끼에서 성체가 되는 특정 시기와 이때 공통으로 겪는 경험을 ‘와일드후드’라고 명명하고, 그 전개 방식과 내용이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즉, ‘와일드후드’를 지나면 맹렬하게 양육자의 보호에서 벗어나려 하고, 괜히 동료들과 싸우며, 무리와 비슷하게 몸 색깔을 바꾸고, 의지적으로 서열 다툼에 끼어든다. 인간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다.
두 저자의 연구는 10여 년 전 겨울의 캘리포니아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백상아리 수백 마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바다로, ‘사춘기’ 해달들이 주기적으로 돌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저자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달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0대와 많이 닮았다”고 느꼈고, 다양한 종(種)의 청소년기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해달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결과가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무자비한 포식자에게 물려 피를 흘리고, 드물게는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대부분 해달들은 ‘죽음의 지대’를 무사히 건너 ‘바다 물정’에 밝은 ‘청년’ 해달로 거듭났다. 시간과 경험, 연습과 실패를 자양분 삼아 ‘어른’이 되어가는 인생의 한 단계가 스친다. 저자들이 지나친 의인화를 스스로 염려하고, 일부지만 ‘과학적 탈선’이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끝내 이 연구를, 이야기를 완성한 이유다.
책에 따르면 와일드후드는 ‘안전’ ‘지위’ ‘성’ ‘자립’을 배우고 관련 기술을 훈련한 후에 완료된다. 이 4가지 키워드를 4가지 종의 야생동물의 실제 서사와 매치해 풀어내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고,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긴 시간 끈질긴 추적으로 완성한 연구 결과는 마치 우화나 동화처럼도 느껴진다. 예컨대, ‘안전’에서 우리는 남극에 사는 킹펭귄 우르술라를 만난다. 책은 한 끼에 펭귄을 10마리씩 먹어치우는 바다표범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우르술라가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연을 소개한다. ‘지위’ 편에서는 수컷 하이에나 슈링크가 살벌한 공동생활과 치열한 서열 다툼에서 어떻게 견디고 승리를 쟁취하는지 기록했다. ‘성’은 암컷 혹등고래 솔트가 구애를 하고, 또 구애를 거절하는 성적 의사소통의 훈련 과정을 다뤘고, 16개월 된 늑대 슬라브츠의 성장이 ‘자립’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여정을 좇는 일은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그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우리를 야생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아마 많은 이들이 펭귄 우르술라가 사라져 버릴 때 정말로 좌절하게 될 것이다. 책에 따르면, 우르술라의 송신기는 석 달 만에 사라져 버렸고, 그 남은 삶이 미스터리로 남았다. 늑대 슬라브츠의 사례는 가장 설득력 있고 자세하게 실려 있다. 이탈리아 북동 지역을 떠난 슬라브츠는 굶주림과 고립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느새 이야기는 거친 세상에 홀로 선 청소년이 지닌 ‘회복력’에 대한 찬가가 되어 다가온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야생동물이 가득한 이 과학서를 왜 “인간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매혹적인 책”이라 극찬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 동물과 인간 사이의 유사점을 연구하는 일은 다소 위험하다. 야생동물의 별난 습성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의인화하다가 자칫 심각한 과학적 오류를 범할 수 있어서다. 저자들 역시 연구 초기에는 인간의 본성을 다른 종에게 투영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며 신경생물학, 유전체학 등 다른 분야를 공부할수록 “인간과 동물 사이 존재하는 실질적이고 입증 가능한 신체적, 행동적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들의 말대로 종 간의 연결은 위험하고, 동시에 또 종 간의 연결을 멀리하는 것도 위험하다. 책의 과학적 연구 방법과 추론의 설득력에 대한 치밀한 검증은 차치하고,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일생의 ‘중간 단계’가 오롯이 담긴 책은 우리가 충분히 인간사의 지혜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동물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삶에서 사랑하는 청소년들의 삶을 밝혀 줄 수 있는 일이 되고, 지구는 결국 많은 다른 종의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장소여야 하기 때문이다. 448쪽, 2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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